《박종대 시인의 러브스토리 집사람》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록파 박종대의 러브스토리》



*박성진 칼럼니스트,

문학평론*


부부(夫婦)

박종대 시


우울한 세상에서

재미를 건지려

세상을 휘젓다 집에 들면

신발 한 켤레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는

관심이 무심했던 사람

이제야 철들어

귀한 줄 알고


챙기고 사랑 주려 해도

숙달이 안 되어

쑥스럽기만 한

홀로 핀 들국화


썰렁한 집안 향내 흠

풍겨놓고

방바닥만 훑으시는

쭈글쭈글한 손등, 등 굽은 허리


가는 세월 아까워

잘해주려 해도

자꾸만 엇갈리는

서툰 사랑


그래도 당신 있어

나는 매일 웃는다

덥석 손을 잡아보는

늦은 고백 하나


■□

사랑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시가 된다


■□

박종대 시인의 시 「부부」는 오늘의 시단에서 보기 드문,

시간의 무게를 견딘 사랑을 가장 담백하게 노래한 작품이다.

이 시는 위대한 낭만이나 극적인 서사를 갖고 있지 않다.

오히려 사랑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일상의 미세한 흔들림들,

그 속에서 말없이 지켜준 삶의 무게를 찬찬히 되짚는다.


■□

신발 한 켤레’로 시작하는 시의 초입은 이미 이 시의 모든 정조를 가늠케 한다.

사랑은 언제나 큰일이 아니라 작은 증거로부터 시작된다.

세상을 휘젓고 돌아왔을 때 현관에 놓인 신발 한 켤레,

그것은 물리적 풍경이 아니라 존재의 증명이며

돌아올 집과 기다리는 마음이 있음을 드러내는 은유다.



■□

시의 두 번째 연에서 **‘무심했던 사람’**이라는 표현은 특별하다.

우리는 종종 사랑을 한다고 믿지만,

그것이 관심인지 무관심인지조차 모른 채 살아간다.

사랑은 감탄보다 성찰에서 깊어지는 감정이다.

이제야 철이 들어 귀한 줄 안다는 고백은,

사랑을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오히려 오래된 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임을 시사한다.


■□

이어지는 연에서는 '숙달되지 않은 사랑'이 등장한다.

시인은 “챙기고 사랑 주려 해도 / 숙달이 안 되어 / 쑥스럽기만 한”이라 표현한다.

사랑이 기술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진실은

이처럼 쑥스러운 들국화 한 송이처럼 피어난다.

이때의 '쑥스러움'은 감정의 미성숙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감정을 오히려 더 깊이 다룰 줄 아는 이의 절제된 표현이다.



■□

시의 중반부로 접어들면 시간의 흔적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썰렁한 집안 향내 흠 풍겨놓고”라는 구절은

존재 그 자체가 공간을 채우고 향기를 남긴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어지는 “방바닥만 훑으시는 / 쭈글쭈글한 손등, 등 굽은 허리”는

세월의 무게가 신체에 새긴 고요한 증표다.

이때 시인은 노년의 육체를 연민이나 비애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 모든 주름과 굽음 속에 수고로움과 인내, 그리고 여운을 품는다.



■□

그리고 마침내 시의 정조는 마지막 두 연에서 크게 전환된다.

“가는 세월 아까워 / 잘해주려 해도 / 자꾸만 엇갈리는 / 서툰 사랑” —

이는 시간의 유한성을 자각한 이들이 흔히 겪는 내면의 고백이다.

사랑하고 싶고, 잘해주고 싶은데

이미 많은 날들이 흘렀고, 말은 생각만큼 따라주지 않는다.

그래서 사랑은 '가엾은 감정'이 아니라,

끝내 포기하지 않는 감정이 된다.



■□

마지막 연,

“그래도 당신 있어 / 나는 매일 웃는다 / 덥석 손을 잡아보는 / 늦은 고백 하나”는

이 시의 백미다.

이 네 줄에서 우리는 사랑의 모든 가능성을 본다.

이 구절은 단순한 고백이 아니다.

사랑은 늦더라도 다시 피어날 수 있으며,

손을 잡는 단 한순간으로 모든 시간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진실이다.


■□

이 시는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사랑이란 “동시에 존재하며 서로를 위한 시간을 계속해서 배려하는 것”이라는

하이데거적 시간성과도 닿는다.

즉, 과거에 대한 후회가 아닌,

현재에서 피어나는 사랑의 자각이야말로

삶의 가장 완숙한 순간임을 이 시는 조용히 알려준다.


■□

아내라는 시간, 그 이름 앞에 고개를 숙이다


■□

시인 박종대는 말한다.

‘그래도 당신 있어 나는 매일 웃는다’고.

이 한 줄이면 충분하다.

이 시는 누군가의 손을 덥석 잡고,

말하지 못했던 고백 하나를 늦게라도 꺼내보는 사람들의 노래다.


■□

사랑은 때론 무심했고, 어리석었으며,

말보다 몸짓이 앞섰고,

침묵 속에서 흘러갔다.

그러나 그 무심함과 쑥스러움 속에

시인은 끝내 ‘사랑’이라는 이름을 되찾는다.


■□

이 시는 결국 한 사람에게 바치는 삶의 송가이자,

모든 세월을 견디고도 여전히 웃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늦은 고백의 꽃다발이다.

아내라는 이름은,

어떤 시보다 먼저 삶을 썼고

어떤 시보다 나직하게 시인을 완성시켰다.

그 손등과 허리, 방 안에 남은 향기까지 —

모두가 사랑의 연대기이자

이 시의 뿌리다.

따라서 이 시는 ‘사랑 시’가 아니라,

한 생의 완결을 품은 ‘헌정 시’라 부를 수 있다.

오늘도 여전히 무심한 듯,

한 사람의 시간을 받아내는 이들에게,

이 시는 작지만 깊은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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