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문학평론-분노의 꽃꽂이

박성진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변희자 꽃꽂이 연작 시 21

**박성진 문학평론**


분노의 꽃꽂이 연작 21

변희자 시


지난봄 불탄 산이었다

잿더미 속 새순들이

겨우 눈을 떴던 곳


폭우가 제멋대로

진흙꽃을 꽂았다

줄기도 없이

잎새도 없이

사람 위에 꽂았다


초록이 피어나기도 전에

검붉은 흙탕이

산을 무너뜨렸다


비의 분노는 어디까지인가


앞마당에는 붉은 흙탕길이 나고

논과 밭은 쓸려가거나

저수지로 변했다

담과 집이 허물어지면서

마음도 무너졌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어딘가

비는 죄가 없다


정든 길은 사라지고

허리까지 찬 물에

새 물길만 폐허로 남았다


꽃꽂이를 잘못한 건 아니다

기후는 경고했고

기억 위에 던져진

물의 모욕이다


사람 삶의 터전에

봄에는 불

여름에는 험악한 물

고속도로가 끊기고

철도는 멎었다

도시는 갇혔고

농어촌은 주저앉았다


자연에게서 청구서를 받은 것이다


우르르 쾅쾅

꽃꽂이는 치유여야지

으름장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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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변희자의 「분노의 꽃꽂이 연작 21」은 단 한 편의 시로도 기후 재난의 파괴력과 인간 삶의 무력함을 강렬하게 압축한 작품이다. 시인은 ‘꽃꽂이’라는 은유를 통해 폭우의 참상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다. 꽃꽂이는 본래 미와 치유의 상징이지만, 이 시 속에서 그것은 줄기와 잎이 없는 ‘진흙꽃’으로 변질된다. 즉, 아름다움이 아니라 파괴의 결과물로, 치유가 아닌 위협으로, 자연의 분노를 상징한다.


시의 첫 연은 ‘지난봄 불탄 산’이라는 파국의 기억에서 출발한다. 봄에는 화마가, 여름에는 홍수가, 이어지는 재해의 연속은 단순한 자연 현상을 넘어 ‘기후 위기’라는 경고로 독자 앞에 다가온다. 시 속에서 ‘비는 죄가 없다’는 구절은 자연 자체의 무죄를 선언하는 동시에, 그 분노를 촉발한 원인—인간 문명의 무분별한 개발과 기후 변화를 초래한 행위—를 은연중에 비판한다.


‘자연에게서 청구서를 받은 것’이라는 구절은 이 작품의 윤리적 중심축이다. 청구서는 응당 지불해야 할 책임과 대가를 의미하며, 이는 곧 우리가 만들어낸 재난의 결과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시대적 운명을 지시한다. 여기서 시인은 피해의 나열에만 머무르지 않고, 그 원인과 책임의 주체를 묵묵히 독자의 의식 속에 던진다.


마지막 구절 ‘꽃꽂이는 치유여야지 / 으름장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는 시의 비판과 애도의 정조를 동시에 품는다. 치유와 아름다움의 상징이었던 꽃꽂이가 협박과 경고로 변질된 현실은, 우리가 이미 감당해야 할 변화를 늦추고, 회복의 가능성을 스스로 훼손해 온 자화상이다.


결국 이 시는 ‘기후 위기 문학’의 한 사례로 읽힌다. 재난을 단순한 자연의 변덕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서 비롯된 상호작용의 결과로 풀어낸다. ‘분노의 꽃꽂이’라는 역설적 제목은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미학적 장치이자 경고의 언어로 작동한다.


이 시를 읽는 동안 독자는 재난 현장을 목격한 듯 생생한 이미지 속에 머물게 된다. 그러나 시의 진정한 힘은 그 이미지 너머에서, 우리가 이미 알고 있으나 외면해 온 불편한 진실을 일깨우는 데 있다. 이 작품은 단지 한 해 여름의 기록이 아니라, 앞으로 맞이할 계절들에 대한 예언이며, 그 예언을 무겁게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는 문학적 청구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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