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억세게 운 좋은 늙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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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문학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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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정 시인 시
억세게 운 좋은 늙은이, 하늘에 전해진 소식
이기정
한여름 충청도 시골집 마루,
할머니 팔을 베고 단잠에 빠진 네 살 손자.
갑자기 우르르—
인민군 병사들이 들이닥쳤다.
“순경 집이 어디냐?”
총부리에 시선을 꿰뚫린 할머니,
이웃집을 가리킨 손끝 너머
잠시 후, 요란한 총소리가 울렸다.
홍역으로 앓던 개구쟁이,
쥐 고기가 좋다던 옛 민간요법에
눈이 퀭한 셋째 아들,
푹 고아 먹이고 기운이 돌아왔다.
아침저녁 무콩나물밥,
점심 굶기 일쑤,
고구마 한 알이 하루를 버티게 하던 시절.
36개월에서 줄어들던 군 복무,
1·21 사태 이후 다시 늘어난 34개월 10일.
V자 훈장 반짝이는 육군 병장으로
무사 제대했다.
어렵사리 들어간 직장,
코피를 쏟으며 휴일도 반납하고
무임금도 마다하지 않았다.
고단한 몸 쓰러져 병원 침대 위,
의식이 멀어지는 순간—
죽음과 마주한 듯한 기묘한 평온,
다시 깨어나 숨을 들이켰다.
임원 딱지를 달고
오십 년 직장 생활,
일흔여섯에 옷 벗고 나왔다.
코로나라는 불청객,
독방에 갇혀 열흘 만에 무혐의 석방.
다시 자유의 바람을 마셨다.
고비마다 쓰러질 듯 일어서며
팔십 고개를 향해 걷는 오늘,
어제처럼, 내일을 향해—
그 발자국 뒤에는
안방 한편, 산통에 몸을 웅크린 며느리 곁
물 대야를 두고 마음 졸이던
할머니의 그림자가 있었다.
외아들 집안 여덟 손주,
웃음 속에 자랑을 멈추지 않던 시절.
그 자리를 이어받은 어머니,
다산에 지친 몸 이끌고
고된 시집살이의 돌담을 넘어
햇살 같은 자식들을 키워내셨다.
“우리 집안에도 교수 한 사람 나왔으면 좋겠다.”
“셋째가 교회 나가는 것, 보고 눈 감아야 할 텐데.”
노심초사하시던 어머니,
소망을 남기고 하늘로 가셨다.
세월이 흘러,
어린 손자 장성해 넷째 손자 교수 되고,
셋째 아들 늦은 나이에 세례를 받았다.
하늘나라의 어머니,
천사들이 전하는 이 소식을 듣고
미소로 세월을 감싸고 계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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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이 작품은 두 편의 자전적 서사시를 하나로 묶어, 개인의 생애사와 가족사의 굵은 줄기를 한 흐름으로 이어낸 장대한 회상의 노래다. 「억세게 운 좋은 늙은이」가 개인의 생존 서사와 역사의 고비를 넘긴 생명력에 초점을 맞춘다면, 「하늘에 전해진 소식」은 가족 세대 간의 정서적 유산과 신앙·학문적 소망의 실현을 그린다.
시의 초반부는 전쟁과 가난이라는 시대적 비극 속에서의 생존기를, 중반부는 노동과 병마, 그리고 다시 살아나는 재기의 순간들을 담았다.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시선은 자연스럽게 집안의 뿌리와 모성의 기억으로 옮겨가며, 세대를 관통하는 가치와 기도의 성취를 보여준다.
이기정 시인은 여기서 단순한 ‘회상’을 넘어, 한 개인과 가족사가 곧 시대사의 축소판임을 드러낸다. 특히 과거의 위기 장면과 현재의 성취 장면이 교차하며, 독자는 ‘운’이라는 단어가 단순한 행운이 아니라 생존·노력·인내가 축적된 결과임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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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두 편의 시가 합쳐진 이 장편 서정시는, 개인의 인생 서사와 가족·세대의 서사가 한 강물로 흘러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군사정변, 가난, 병, 전염병 등 숱한 고비를 넘어서도 ‘걷는다’는 결말의 이미지에서, 시인은 자신을 ‘억세게 운 좋은’ 존재로 규정한다. 그러나 그 ‘운’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선대의 희생과 자신이 견뎌낸 세월이 만든 필연임을 독자는 읽어낼 수 있다.
이기정 시인의 문체는 장면 전환이 분명하고, 구체적 사실 묘사가 서사적 밀도를 높인다. 덕분에 독자는 한 사람의 생애를 따라가면서도, 그 안에 깃든 시대정신과 가족 공동체의 힘을 함께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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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정 시인의 마무리글
> 나는 걸어왔다.
총부리 앞에서 숨죽이던 할머니의 품속에서,
고구마로 하루를 견디던 마당에서,
병상에서 죽음과 마주한 하얀 천장의 아래에서,
그리고 어머니의 소망이 꽃피운 오늘에서.
내 걸음마다 묻은 흙은,
운이 아니라 살아낸 세월이었다.
나는 오늘도 걷는다.
어제처럼, 내일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