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물거리면 좋겠다》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꼬물거리면 좋겠다》



박성진 문학평론


꼬물거리면 좋겠다

이효


울타리 안 감나무

매달린 감은 할머니 엉성한 이


시집온 지 여러 해가 넘은 새댁

뱃속은 언제나 공실


익지 않은 시퍼런 말

툭, 떨어진다

입맛은 화석이 된다


태양도 샤워를 마친 여름

여자의 가슴에 가을이 흐른다


침묵만이 열려 있는 나무

소문난 이파리만 반질거린다


내년에는 붉은 감이 뱃속에

벌겋게 들어앉아 꼬물거리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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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꼬물거리면 좋겠다〉는 감나무 한 그루를 통해 여인의 기다림과 속마음을 담아낸 시다. 울타리 안에 서 있는 감나무, 매달린 감을 ‘할머니 엉성한 이’에 빗댄 첫 구절은 세월의 무게와 삶의 질감을 동시에 전한다. 이 ‘엉성한 이’는 단지 노년의 풍경이 아니라, 아이의 울음이 사라져 가는 사회와 새 생명을 잉태하지 못한 세대의 공허를 은유한다.


2연의 ‘공실’은 생명을 기다리지만 품지 못한 텅 빈 자궁이다. 자궁은 생명의 근원이자 작은 우주이며, 그 공허함은 개인의 상실을 넘어 공동체의 미래를 비추는 그림자다. 떨어지는 덜 익은 감과 ‘시퍼런 말’은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차가운 상처를, ‘입맛은 화석이 된다’는 표현은 그 기다림 속에 굳어버린 마음을 포착한다.


여름을 지나 가슴속으로 스며드는 가을은 단순한 계절이 아니라, 세월이 남긴 허전함과 깊이다. 마지막에 그리는 ‘붉은 감’은 단순한 열매가 아니라 새 생명의 약속이며, 품 안에서 꼬물거릴 날을 기다리는 다정한 희망이다.


이효 시인의 시는 군더더기 없이 사람 사는 냄새와 계절의 숨결을 품고 있으며, 개인의 서정과 함께 사회적 묵시까지 담아낸다. 읽고 나면 마음 한구석에 따뜻함과 묵직한 성찰이 동시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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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꼬물거리면 좋겠다〉는 감나무라는 사물을 매개로 세대와 세월, 기다림과 희망, 그리고 공동체의 위기까지 아우르는 작품이다. 이효 시인은 소박한 언어 속에 단단함과 온기를 담고, 현실을 꿰뚫는 시선으로 삶을 포착한다. 이러한 시세계를 바탕으로 그는 제24회 황진이문학상 본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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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 시인 프로필

본명: 이효순

필명: 이효

등단: 신문예 등단

문학 활동: 인사동시인협회 부회장, 한국문인협회 회원, 국제 PEN한국본부 회원

저서: 시집 『당신의 숨 한 번』, 『장미는 고양이다』

수상: 제3회 아태문학상, 제24회 황진이문학상 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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