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지금도 살아 있는가?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철학은 지금도 살아 있는가?


박성진 문학평론

<제1부>



철학은 지금도 살아 있는가?

씨앗보석 김은심 시인


니체의 망치가

오늘의 허공을 두드린다


쇼펜하우어의 그림자가

심연 속 고독을 건드린다


그러나 사람들은

손바닥 속 작은 빛을

신처럼 끌어안고

잠들기 전까지

눈을 떼지 않는다


그 빛은

온 세상을 보여주지만

생각할 틈은 허락하지 않는다


철학의 자리는

속도와 소음으로 채워진다


니체의 ‘운명 사랑’과

쇼펜하우어의 고독이

아직도

우리 심장을 울린다는 것을


그들의 사유는

지나간 문장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숨결 속에서

삶을 흔들고 있다


허무와 절망 속

한 줄기 빛을 길어 올리는 일,

그것이 살아 있는 철학이며

곧 우리의 삶이다



---


평론


〈철학은 지금도 살아 있는가?〉는

니체와 쇼펜하우어—

서구 철학의 거인들을

과거의 박물관 속 인물이 아니라

오늘의 삶 한가운데로 불러낸다.


‘니체의 망치’는

낡은 가치와 허위를 깨뜨리는

결정적인 질문의 도구이고,


‘쇼펜하우어의 그림자’는

세계의 본질을

의지와 고독의 심연 속에서

더듬어 가는 사유의 형상이다.


이 두 상징은

서로 다른 철학적 태도—

파괴와 응시—를 압축적으로 드러내며,

시의 서두부터 강한 긴장을 만든다.


그러나 두 번째 연에서

시선은 현대인의 일상으로 옮겨간다.


‘손바닥 속 작은 빛’—

이것은 단순한 불빛이 아니라

스마트폰이라는

현대인의 손에 쥐어진 작은 우주다.


그 빛은 세상을 무한히 보여주지만

사유의 여백은 빼앗아 간다.

철학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속도, 소음,

그리고 끊임없이 쏟아지는 정보다.


8월 8일에 본 니체·쇼펜하우어 연극이

이 장면과 겹쳐진다.

무대 위 쇼펜하우어는

개에게 ‘헤겔’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외친다.


“개새끼, 헤겔!”


관객은 폭소하지만

그 웃음 뒤에는

철학이 현실과 단절될 때의 공허함이

스며 있다.


시 속 ‘작은 빛’은

바로 이 시대의 표징이다.

웃음은 남아 있지만

질문은 점점 사라진다.


그럼에도 시인은 단언한다.


“니체의 운명 사랑”과

“쇼펜하우어의 고독”은

여전히

우리 심장을 울린다.


이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 속에서 살아 있는

사유의 호흡이다.


‘운명 사랑(Amor fati)’은

절망까지 긍정하라는 명령이고,

쇼펜하우어의 고독은

삶의 본질을 직시하는 용기다.


시인은 속도와 소음 속에서도

이 철학의 숨결을

다시 길어 올릴 수 있다고 믿는다.


결국 이 시는

철학의 부재를 고발하는 동시에,

그 부활을 향한

조용하지만 단단한 선언이다.



---


총평


김은심 시인의 〈철학은 지금도 살아 있는가?〉는

철학의 현재성과 부재를

동시에 응시하는 작품이다.


‘손바닥 속 작은 빛’은

현대인이 숭배하는

새로운 신이자,

철학의 자리를 밀어낸 강력한 존재다.


그 빛 앞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보는 듯하지만

사유의 깊이는 잃어가고 있다.


그러나 시인은

철학의 죽음을 선언하지 않는다.


니체의 망치와

쇼펜하우어의 고독은

여전히 살아 있으며,

그것은 먼 과거의 문장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호흡한다.


이 시의 질문은 단순하다.


“철학은 살아 있는가?”


그러나 그 속에는

더 날카로운 물음이 숨어 있다.


“당신의 심장은

아직 질문하고 있는가?”


이 작품은

현대인의 손바닥 속 빛을 향한 경고이자,

그 빛 너머의 어둠과 깊이를

다시 회복하라는 요청이다.


살아 있는 철학은

책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질문을 멈추지 않는

우리 안의 심장에서 시작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철학은 지금도 살아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