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이인애 시인 평론 "거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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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칼럼니스트
문화,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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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 — 多情 이인애 시
동서남북 네 귀에
바람으로 그물을 엮어
희망의 이름으로 걸렸다
비가 오면 비에 젖고
눈 내리면 눈을 맞으며
기다림이 배인 삶
날개도 없이
허공을 떠받치는
고요한 운명
나방이 일으키는
작은 바람에도
한 없이 흔들리는 몸짓
간절함이 빚어낸 침묵을
시간의 그림자에 드리우며
유한한 전율에 목숨을 걸다
내일은 더 나으리란 기대에
불신을 거두며
온전히 하루를 밀고 나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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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 거미의 사유와 철학
1. 존재의 비유: 허공을 지탱하는 운명
이 시의 ‘거미’는 단순한 곤충적 이미지가 아니다 자기 삶을 스스로 떠받치는 은유이다. 거미줄은 허공 속에 그려진 하나의 다리이며, 그 위에 매달린 존재는 날개조차 없는 연약한 생명인 것이다 그러나 그 연약함은 무력함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묵묵히 떠받친다/ 고요한 의지다/윤동주의 시에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민감한 자아처럼, 여기서 거미 역시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지만, 그 흔들림이 곧 생존의 진실이다.
2. 시간과 기다림: 존재의 윤리학이다
“비가 오면 비에 젖고 / 눈 내리면 눈을 맞으며”라는 구절은 단순한 자연의 묘사가 아니다. 거미의 삶은 수용의 철학에 기초한다 자연을 온몸으로 맞아내는 태도는, 삶의 불가피한 고통을 수용하는 (Amor fati)를 떠올리게 한다. 기다림은 단순한 수동이 아니었다 삶의 본질을 신뢰하는 적극적 인내로 보아야 한다
3. 침묵, 전율: 유한성의 미학울 그려낸다
시인은 “간절함이 빚어낸 침묵”이라 표현하였다. 거미줄은 보이지 않는 긴장의 끈이다 침묵 속에서 절박함이 숨어 있다. 작은 흔들림조차 생사의 갈림길이 되기에, 그렇다 침묵은 단순한 고요가 아니었다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전율의 자리였다. 유한한 전율에 목숨을 걸다/ 이 구절은
인간 실존의 압축된 선언처럼 울려 퍼졌다
4. 희망, 불신: 생존의 논리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내일은 더 나으리란 기대에 / 불신을 거두며 / 온전히 하루를 밀고 나가는” 거미를 그려내었다/
희망은 단순한 긍정이 아니다
불신을 거둔 끝에 드러나는 실존적 결단인 것이다. 내일을 보장받지 못하는 존재이지만, 그럼에도 하루를 짓고 삶을 이어간다. 이는 시인의 윤리적 선언이다
모든 인간이 짊어지는 길인 셈이다
5. 윤동주 시인의 성찰과도 연결된다
윤동주 시에서 드러나는 별빛, 바람은 거미 시와도 닮아 있다. ‘허공을 받치는 운명’은 윤동주의 부끄럼 없는 삶의 자세를 떠올리게 한다 억압 속에서도 별빛을 기다리던 윤동주의 고독한 시혼을 반영한다.
이인애 시의 거미는 곤충적 차원을 넘어선 윤동주적 또 다른 상징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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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거미〉는 단순한 곤충의 묘사를 넘어선다 희망을 형상화한 철학적 시다.
거미줄은 인간이 허공 속에서 짓는 자기 삶의 세계이다 흔들리며 버티는 몸짓이지만
자신을 붙들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은 거미를 통해
희망의 이름으로 나가는
존재의 존엄을 선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