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박사 엄창섭 시인의 "고요다"》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엄창섭 시인 시 "고요다"》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엄창섭 문학박사의

《고요다》

엄창섭 시인 시


고요다


밤은 깊어 삼경인데

수천의 별 호수에 잠기고

바람 끊긴 천년 산사의

아흐, 여울 소리 맑기도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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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illness

by Eom Chang-seop


The night deepens to the witching time,

Thousands of stars in the lake do shine.

In the ancient mountain temple, winds cease,

Ah, how clear the stream’s sound brings such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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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다" 평론


** 삼경(三更)의 시간성 존재와 무(無)의 문턱에서**


시의 첫 구절은

"밤은 깊어 삼경인데"라 선언한다. 삼경은 인간의 의식이 가장 깊은 잠에 잠기는 시각이자, 동시에 도(道)의 문턱에 이르는 초월의 시간대이다.

낮은 인간의 분주와 욕망의 시간이지만, 삼경은 모든 소리가 멎고 자기 존재마저 비워내는 경계의 시각이기도 하다.


이는 동양 철학에서 말하는 "허(虛)"와 통한다.

시인은 이 순간을 단순한 풍경의 묘사로 남기지 않았다

인간의 마음이 본래의 고요 속에 들어가는 시점으로 확장하기에

다다른 것이다


** 별과 호수 무한과 유한의 상응한 시학


"수천의 별 호수에 잠기고"라는 구절은, 하늘의 무한과 호수의 유한이 서로를 비추며 하나가 되는 장면이다. 별은 무한의 상징이며, 호수는 유한한 그릇이다. 무한이 유한 속에 잠기고, 유한이 무한을 품는 순간, 인간은 유한한 몸을 지녔으나 무한을 사유할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이는 칸트가 말한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안의 도덕률’처럼, 인간 정신이 우주와 호응하는 경지를 드러낸다


**천년 산사와 끊긴 바람 시간의 무게와 고요를 승화시키려는

시학의 시도


천년 산사, 그 긴 역사를 버텨온 공간에서는 바람조차 멎어있다. 이는 단순한 무풍의 정적이 아니다 세속의 욕망과 번뇌가 소멸된 경지를 상징하는 것이다. 수많은 세월의 바람은 폭풍과 같았을 터인데, 지금 이 순간 그 모든 흔적이 멈추었다 고요에 다다르며 귀속되었다.


철학적으로 이는 ‘무위(無爲)의 고요’라 할 수 있으며, 노자가 말한 "대교약졸(大巧若拙)"처럼 가장 큰 진리와 지혜가 드러나지 않는 단순한 정적 속에 깃들어 있으므로 고요는 침묵 이상의 무위의 고요이다


** 여울 소리는 존재의 근원적 울림이다


마지막의 "아흐, 여울 소리 맑기도 하여라"는 이 감탄은 단순한 청각의 인상이 아니라 존재의 근원적 울림의 소리다. 모든 소리가 사라진 후 남는 여울의 맑은 소리는 곧 존재 자체의 진실한 호흡이다. 인간의 언어와 욕망이 사라진 뒤에도 남는 것은 자연의 맑은 울림만 남는다 그 소리는 고통과 번뇌를 치유하는 존재의 음악이기도 하다. 철학적으로 이는 하이데거가 말한 ‘존재의 현현(顯現)’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여울의 맑음은 세계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방식이며, 인간은 그것을 통해 자기 존재의 본질을 듣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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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다" 총평***


엄창섭 선생님의 「고요다」는 단순히 밤 풍경의 시적 묘사가 아니라, 무한과 유한, 역사와 고요를 상징하며 소멸과 존재의 울림이 교차하는 철학 시이다. 삼경의 시간성은 인간 의식의 무의 경계를 열어준다 별과 호수는 우주와 자아의 상응을 끊임없이 비추며, 끊긴 바람 속 산사는 무위의 진리를, 그리고 여울 소리는 존재의 근원적 고요를 드러낸다.


이 시는 동양의 선적(禪的) 사유와 서양의 존재론적 철학을 동시에 떠올리게 하며, 읽는 이는 자연의 정적 속에서 자기 존재의 본질을 성찰하도록 이끈다.


고요의 시는 산사에서

마음을 울리는 무위의 고요이며 새로운 길을

나아가기 전 정체성을 풀어주는 맑은 정신으로 일깨우는 에너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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