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박성진 -《손자 마음이 할아버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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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정 시인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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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 마음이 할아버지 마음
별빛마저 불볕더위를 피해
파란 하늘 뒤로 숨어드는 새벽
잔디밭 벽돌 길 위에
평소 보이지 않던 지렁이 행렬
어디로 향하는 걸까
걷는 사람 발길에 밟혀
목숨을 잃을지
조금 더 가면 자동차 길
그것을 알면서 가는 걸까
문득 막내 손자가 떠오른다
할아버지 집에 오면 제일 먼저
잠자리채와 호미 들고
마을 하천으로 달려간다
굼벵이 땅강아지 잠자리
채집통 가득 담아 와
손바닥에 올려놓고 놀다가
다시 제 집으로 돌려보낸다
손자 생각에 잔디 위로 지렁이
되돌려 보내려 하면
미끈거리는 몸 비틀며
자꾸 빠져나간다
한 마리 두 마리
일곱 마리 모두 놓아주고 나니
내 마음 어찌 그리 뿌듯하던지
잠시 성현이 된 듯하였다
다음 날 새벽, 그다음 날도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는다
왜 어제 내 발길 앞에 나타났을까
손자의 마음과 내 마음을
비추어 보라는 뜻이었을까
오늘따라 새벽 별빛이
유난히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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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론
*시의 서두는 자연과 우주의 공명으로
첫 연에서 시인은 “별빛마저 불볕더위를 피해 / 파란 하늘 뒤로 숨어드는 새벽”이라 노래하였다.
이는 단순한 여름 새벽의 묘사가 아니라, 거대한 우주적 질서 속에서 작은 생명들의 움직임이 포착되는 순간이다.
별빛조차 더위를 피해 숨는다는 의인화는, 자연 전체가 인간의 감각과 마음에 동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어지는 지렁이 행렬은 평소 잘 보이지 않던 생명들의 등장으로, 새벽의 고요 속에서 생명이 가지는 위태로움과 목적성을 드러낸다.
*지렁이 행렬 연약한 생명의 상징으로
지렁이들이 벽돌 길을 따라 나아가는 모습은 곧 인간 삶의 은유다. “걷는 사람 발길에 밟혀 / 목숨을 잃을지 / 조금 더 가면 자동차 길”이라는 대목에서, 생명은 언제든 위험과 파멸 앞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지렁이들은 멈추지 않고 간다." 이는 삶의 본능이자, 위험을 알면서도 자기 길을 가는 존재의 결연함을 상징한다.
이 순간 시인은 지렁이와 자신의 손자를 겹쳐 떠올린다.
*손자의 등장 놀이와 생명의 윤리
손자는 단순히 자연을 채집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채집통 가득 담아 와 / 손바닥에 올려놓고 놀다가 / 다시 제 집으로 돌려보낸다”는 구절에서 볼 수 있듯이 생명을 존중하는 태도를 본능적으로 실천하였다. 아이의 마음은 순수하다. 잡는 행위와 놓아주는 행위가 동등하게 존재한다 이 과정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배우고 또한 가르친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쉽게 잊혀가는 ‘자연과의 공존 윤리’를 아이의 놀이 속에 담아낸 장면이다.
* 할아버지의 공감과 깨달음
손자의 기억을 떠올린 화자는 지렁이들을 다시 잔디 위로 돌려보내려 한다. “미끈거리는 몸 비틀며 / 자꾸 빠져나간다"는 장면은 생명은 인간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음을 보여준다. 결국 “일곱 마리 모두 놓아주고 나니 / 내 마음 어찌 그리 뿌듯하던지 / 잠시 성현이 된 듯하였다”라는 고백은, 할아버지가 손자의 마음을 체험하며 생명 존중의 성스러운 감각을 얻는 순간이었다. 어린아이의 순수한 윤리가 노년의 사유 속에서 다시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시의 결말 별빛의 의미
마지막 연에서 화자는 사라진 지렁이들을 다시 찾으려 하지만, 결국 보지 못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음’이다. 보이지 않는 생명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존재의 깊은 자리로 돌아간 것이다. 화자는 질문한다. “왜 어제 내 발길 앞에 나타났을까 / 손자의 마음과 내 마음을 / 비추어 보라는 뜻이었을까.” 이는 단순한 자연현상의 묘사가 아니라, 삶의 의도적 계시로 읽힌다. 지렁이의 출현은 손자와 할아버지 사이의 마음을 잇는 다리였으며, 결국 그 깨달음은 새벽 별빛의 곱고도 순수한 빛으로 귀결된다.
** 마무리 평가**
이 시는 세대 간 마음의 교감과 생명 존중의 윤리를 깊이 있게 다룬 작품이다. 지렁이라는 작은 생물, 손자의 순수한 놀이, 그리고 할아버지의 깨달음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자연과 인간, 세대와 세대’가 서로를 비추는 구조를 이룬다. 또한 일상적 장면을 통해 성현적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어, 소소한 삶의 순간 속에서도 성찰과 철학이 피어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시의 끝에서 새벽 별빛이 곱게 빛나는 이유는, 바로 손자의 마음을 통해 되비춰진 할아버지의 마음이 순수하게 정화되었기 때문이다.
손자 마음 할아버지 마음이 교류하면서
시작한 시인의 시는 손자로부터 정화되어
사유가 빛을 발하는 서정시로 행복하고 소소한 추억의 한 페이지로 독자에게도
울림으로 남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