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비 오는 날, 나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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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주 시인 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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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나를 찾아서〉
장대비 흠뻑 젖은 세상
우산 하나 벗이 되어
대모산 자락 따라 묵묵히 걷는 길에
잃었던 나를 찾아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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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서두에
장대비와 자화상
첫 행 “장대비 흠뻑 젖은 세상”은 외부 풍경이자 내면의 자화상이다.
폭우는 삶의 무게와 혼란을 함축해 보여줍니다
동시에 모든 차이를 씻어내는 힘을 지닌다. 비 앞에서 인간은 가면을 벗고, 꾸밈없는 존재의 얼굴로 서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장대비는 무겁고 압도적인 현실의 은유이면서도, 동시에 세상과 인간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정화의 힘을 가진 상징으로 작동한다
*우산 속 고독, 작은 벗
“우산 하나 벗이 되어”라는 구절은 시인의 시세계를 잘 드러내고 있다 단순히 비를 가리는 도구에 불과한 우산을 ‘벗’이라 부르고 있다 시인은 사물에도 생명을 불어넣었다.
외로운 길 위에서 이 소박한 벗은 인간적 위안을 시인의 세계와 맺는 관계의 방식이자, 사소한 것 속에서 삶의 의미를 길어낸 것이다 작은 사물에서 느낀 연대감은 결국 고독을 넘어서는 길까지 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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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는 자기에게 돌아가는 길
“대모산 자락 따라 묵묵히 걷는 길”은 장소의 묘사인 동시에, 내면을 향한 자기 회귀의 행위를 말한다 걷는다는 것은 시간을 천천히 살아내는 일이며, 발자국마다 생각을 비워내는 과정이다.
산길을 따라 걷는 행위는 어디론가 떠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는 순환의 길이 된다. 시인은 이 길 위에서 침묵 속의 사유를 이어가며, 본래의 자기를 찾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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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었던 나”의 발견은 ---무상 속의 회복의 정신이다
“잃었던 나를 찾아”라는 구절은 이 시조의 중심에 서있다.
삶 속에서 인간은 늘 자기 자신을 잃는다. 사회적 역할과 타인의 시선, 욕망과 현실의 압박 속에서 본래의 나는 희미해진다.
그러나 장대비 속 걷기는 그런 덮개를 벗어내고, 잊혔던 자기를 다시 드러나게 하였다. 여기에는 불교적 무상(無常)의 사유가 깃들어 있다. 모든 것이 흘러가고 사라지지만, 바로 그 흐름 속에서 새로운 내가 다시 태어난다. 잃음과 되찾음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길 위에서 만나는 두 얼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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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가벼움의 귀환
마지막 구절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오네”는 시조 전체의 긴장을 해소한다. 무겁고 어두운 비 속에서 시작한 길이 결국 가볍고 환한 귀환으로 끝난다. 이는 단순한 기분의 변화가 아니라, 삶의 무게를 직면하고 통과했기에 얻을 수 있는 자유의 상태인 것이다. 억지로 붙잡지 않으면서도 자연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는 순간, 인간은 비로소 가벼워질 수 있다 노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철학처럼, 억지로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에 얻어지는 평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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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의 미학의 힘
이 작품은 짧은 시조의 틀 안에 큰 울림을 담아내었다. 시조는 초장–중장–종장의 3단 구조 속에서 시작의 무거움, 중간의 길과 탐색, 마지막의 회복과 가벼움으로 정연하게 흘러간다. 간결하면서도 응축된 표현은 여백을 남기며, 독자로 하여금 그 빈 공간에 자기 사유를 채워 넣게 하였다. 시조의 절제미가 현대적 체험과 어우러져서 새로운 깊이를 만들어낸
작품으로 수작에 가까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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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음말 ― 이 시조가 아름다운 이유
신윤주 시인의 〈비 오는 날 나를 찾아서〉가 아름다운 것은, 짧은 형식 속에서 삶의 무게와 자기 회복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선명하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비는 고통이자 정화의 상징이고, 길은 방황이자 귀환의 통로이며, 우산은 고독 속의 작은 위로다. 결국 시인은 잃었던 자신을 되찾아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온다.
이 시조는 단순한 자연 묘사를 넘어, 인간이 자기 자신을 다시 만나는 영혼의 여정을 그려낸다. 그래서 읽는 이의 마음을 정화하고, 고단한 삶 속에서도 가벼운 귀환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건넨다. 바로 그 점에서 이 시조는 짧지만 큰 울림을 남기는, 아름다운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