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그 님은 언제 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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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님은 언제 오나
김석인 시인의 시
꽃이 피면
온다던 우리 님
피고 지고 몇몇 해
오지를 않네.
그님 지금
계시는 그곳은
추워서 꽃 피는 게
늦어서겠지.
아냐 아냐
꽃은 피었건만
꽁꽁 얼은 휴전선
녹으면 온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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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기다림과 역사적 심연의 시학
김석인 시인의의 〈그님은 언제 오나〉는 짧지만 한국 현대사의 가장 깊은 상처를 응축한 시로 언뜻 보아서는 사랑하는 임을 기다리는 전통적 정서의 변주처럼 보이지만, 그 "님"은 단순한 연인의 대상이 아니었다 휴전선 너머에서 올 수 없는 민족 공동체, 곧 분단된 조국의 반쪽을 은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 연의 “꽃이 피면 온다던 우리 님”은 기다림의 시간성을 자연의 주기적 리듬으로 연결하고 있다 봄의 약속처럼 당연히 찾아와야 할 재회의 순간이,
“피고 지고 몇몇 해”로 반복된 세월에도 실현되지 못하였음을 절망적으로 드러낸다.
여기서 ‘꽃’은 순환하는 자연의 시간, ‘님’은 오지 않는 역사적 시간의 불일치를 상징하고 있다
둘째 연에서는 시적 화자가 스스로 묻고 있다. "그님 지금 계시는 그곳은 추워서 꽃 피는 게 늦어서겠지." 이 구절은 사실상 자기기만적 희망을
상징한 것이다 분단 현실을 자연의 계절 탓으로 돌리며, 기다림을 지탱하려는 심리적 고리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어지는 셋째 연은 그 자기를 부정한다.
"아냐 아냐"라는 반복적 부정은 자기기만에서 깨어나는 각성의 순간이다.
꽃은 이미 피었지만, "꽁꽁 얼은 휴전선"이 녹지 않는 한 님은 올 수 없다. 하였다 봄은 왔으되, 민족의 겨울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 있는 것이다.
시의 구조는 단순한 삼단 구성이지만, 그 안에서 1, 희망 2, 자기 3, 반문과 각성이라는 사유의 변증법적 전환으로 전개하여 나가는 것이다.
결국 이 시는 “그님은 언제 오나”라는 질문을 반복하면서도, 답을 외부로 돌리지 않고 역사의 장벽 속에서 끝내는 무력하게 정지하였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기다림의 미학이 아니며 분단의 실존적 절망을 드러낸 것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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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사유의 확장
하이데거는 인간 존재를 기다림 속에서 열려 있는 존재라고 하였다. 김석인 시인의 시는 바로 이 기다림을 민족적 차원에서 체현하였다. 개인의 삶이 아니라 공동체의 미래가 “언제 오나”라는 물음에 매여 있는 것이다. 기다림은 단순한 인내가 아니었다 무한히 지연되는 시간 속에서 자아를 잠식하는 실존적 구속이 되었다.
또한 이 시는 블로흐(Ernst Bloch)의 희망의 철학을 떠올리게 한다. 블로흐는 희망을 단순한 낙관이 아니라 ‘아직, 아님’의 힘으로 보았다. 그러나 김석인 시인의 시에서는
‘아직 그리고, 아님’이 영원히 미루어진 현실로 고착되어 있다. 꽃은 피었으나, 휴전선이라는 역사적 얼음은 절대로 녹지 않기 때문이다.
이 불가능성의 상황이 바로 분단 민족의 실존이라는 것으로
이 시는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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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영어시를
"To connect with" 세계적 사유의 울림,
한 줄의 짧은 영어시를 덧붙인다.
이는 T. S. 엘리엇의 『Four Quartets』에서 영감을 받은 변주다:
“Between the bloom and the frost,
the promise waits — unfulfilled.”
(꽃과 서리 사이에서,
약속은 기다린다. 이루어지지 않은 채.)
이 짧은 시구는 김석인 시인의 시와 마찬가지로, 피어난 꽃(희망)과 얼어붙은 휴전선(장벽)의 모순적 공존을 압축하고 있어서 공감대를 형성한 시는 꽃과 서리를 오가는 아픔이 있다 꽃은 피어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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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그님은 언제 오나〉는 단순한 서정시를 넘어, 한국 분단사의 존재론적 상황을 함축한 작품이다.
짧은 형식 안에서 자연의 시간과 역사의 시간을 교차시키는 작품이다 희망과 절망의 변증법을 통하여 민족 공동체의 실존적 고통을 드러내주었다. 김석인 시인의 시는 기다림의 노래이자, 그 기다림이야 말로 결코 단순한 자연의 순환처럼 이루어질 수 없음을 폭로하는 역사적 증언이 되었기에 이 작품은
민족의 공동체의 아픔과 좌절을 알아야 쓸 수 있는 귀한 작품으로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