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박성진 평론가의 《톰슨가젤의 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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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창섭 문학박사의
아프리카, 전 인류를 향한 톰슨가젤의 질주》
《삶의 교시 아프리카 톰슨가젤의 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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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창섭 시인 시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의 여명에
톰슨가젤이 잠에서 눈을 뜬다.
정글의 사자보다 더 빠르게
못 달리면 먹힌다는 것 예감하며,
역풍 가르며 본능적으로 질주한다.
새벽 푸른빛 일어서는 밀림에서
맹수의 제왕 사자가 깨어난다.
가젤보다 힘차게 역주하지 않으면
허기로 죽는 까닭 알고 있기에
온몸으로 해 뜨는 초원에서
가젤 앞지르는 야성을 발동한다.
그대 또한 가젤이든, 사자이든
아침 해가 뜨기 전 삶의 처소에서
열 종의 일념으로 목숨을 걸고
역풍 속에서도 질주의 끈 팽팽하게
삶의 업보 業報라 늦출 수 없다.
《Life’s Lesson in Africa — The Ambition of a Thomson’s Gazelle》
Um Chang-Seob
At dawn on the Serengeti plains of Africa,
a Thomson’s gazelle awakens from sleep.
It senses that unless it runs faster
than the lion of the jungle,
it will be devoured—
and so it races, cutting against the headwind, by instinct.
In the rising blue of the forested dawn,
the lion, king of beasts, awakens.
Unless it surges forward with more force than the gazelle,
it knows it will die of hunger.
Thus with its whole body it unleashes
its wild drive across the sunlit plains.
You too, whether gazelle or lion,
before the morning sun has risen
must stake your life with burning resolve,
keep the string of your sprint taut against the wind.
Life’s karma cannot be delayed.
평론:정반합(正反合)으로 읽는
아프리카의 대서사시 "가젤의 야망"
서론은 정(正)의 자리, 존재의 찬가로 시작한다
시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가젤의 눈뜸은 단순한 동물의 기상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가 매일 새롭게 시작되는 순간, 정(正)의 선언이다.
헤겔 철학에서 정은 존재가 자기 자신을 긍정하는 첫 단계이다. 여기서 가젤의 “눈 뜸”을 보아야 한다
곧 생명 자체의 긍정이며, 죽음 이전의 순수한 생존의 기쁨인 것이다
아프리카 초원에 떠오르는 여명은, 인류 문명의 원초적 기억을 상기시킨다.
인류 또한 생존의 긍정에서 역사를 시작했다.
씨앗이 땅을 뚫고 나올 때의 힘, 원시 부족이 불을 지필 때의 희열 이것이 바로 삶의 교시이며 뜨거운 정이다. 엄창섭 박사의 시는 이 찰나를 포착하였다
문명사의 맨 밑바닥까지 철저히 드러내고 있음을 시에서 밝히는 것이다
사자의 각성을 보라 반(反)의 위력, 부정의 등장이 아닌가
그러나 시는 곧 반대의 장면으로 전환한다. “맹수의 제왕 사자가 깨어났다.”
사자는 가젤의 긍정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존재다. 헤겔의 반(反)은 정을 무너뜨렸다 충돌을 야기하였다.
사자의 존재는 가젤에게 죽음의 공포를, 자신에게는 생존의 필요를 동시에 안기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부정이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는 점이다. 사자가 없다면 가젤의 속도는 더뎌질 것이다 가젤이 없다면 사자의 힘도 어김없이 쇠락한다.
부정은 정을 깨뜨리면서도, 동시에 그 활력의 정을 더 강하게 만들어버린다. 반은 정을 소멸하면서, 정을 더 높은 단계로 밀어 올린다.
*합(合)의 장엄함, 질주라는 창조적 드라마
가젤이 달리고 사자는 쫓는다.
이 순간 발생하는 것은 단순한 먹이사슬의 공포가 아니다.
그것은 정과 반이 충돌하여 만들어내는 합(合)의 절정이다.
합은 타협이 아니다 창조다.
가젤이 있음으로써 사자는 더욱 날카롭게 진화하고, 사자가 있음으로써 가젤은 더욱 빠르게 진화한다. 이 끝없는 경쟁은 아프리카 초원 전체를 “생명의 합의 일체의 무대”로 만든다.
엄창섭 박사의 시에서 이 합은 곧 “질주”로 나타나 있다 질주는 생명과 죽음, 긍정과 부정이 뒤섞여 생성하는 세계사적 다큐 드라마 시로 보아야 한다
인간으로서의 확장과 정반합의 사회학적 측면
세 번째 연에서 시인은 독자를 초원 속으로 불러들인다.
“그대 또한 가젤이든, 사자이든.”
여기서 인간은 아프리카의 동물과 동일한 구조 속에 있다.
사회적 경쟁, 국가 간 대립, 계급 갈등이 모두가 정과 반의 구조로 보는 것이다
노동자는 가젤처럼 달리고, 자본은 사자처럼 쫓는다. 그러나 둘은 서로의 부정 속에서 문명을 발전시킨다. 제국과 식민지, 혁명과 반혁명, 기술과 저항, 모든 것이 정반합의 질주이다.
엄창섭 박사의 사유는 바로 이 지점에서 빛난다. 아프리카의 한 장면을, 인류 문명의 보편적 구조로 확장해 낸다. 이것이 세계적 명성의 뿌리다.
*업보와 필연의
불교와 헤겔의 만남
“삶의 업보라 늦출 수 없다.”
이 한 줄은 시 전체의 철학적 절정의 순간을 보고 있는 중이다.
불교의 업(業)은 과거의 행위가 미래를 결정짓는 필연성이다. 헤겔에게서도 세계사는 필연적 전개 과정이다. 두 전통은 여기서 만난다. 가젤이 달려야 하고, 사자가 쫓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곧 업보이며 동시에 세계사의 필연의 흐름이다
엄창섭 박사의 시는 동서 사상의 융합을 보여주고 있다. 불교적 업보와 서구 철학의 정반합을 하나의 초원 위에서 정리해 나가는 것이다
*스릴과 긴장의 미학 ― 독자를 붙잡는 힘
이 시가 독자에게 스릴을 주는 이유는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변증법적 긴장 때문이다.
가젤이 정, 사자가 반, 둘의 질주가 합. 그러나 이 합은 완결되지 않는다. 잡히면 새로운 가젤이 달리고, 굶으면 새로운 사자가 도전하기 때문이다
이 끝없는 반복은 독자에게 숨 쉴 틈 없는 긴장을 선사한다. 독자는 마치 세렝게티 풀숲에 숨겨둔 두 심장의 박동을 동시에 듣고 있는 듯한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이 스릴은 문학적 고리의 연결이자 세계사의 벅찬 숨결이며 호흡의 본질이 아닐 수 없다
*세계사적 확장을 아프리카에서 전 인류로 뻗어 나간다
헤겔은 세계사를 이성의 자기 전개라 하였다. 엄창섭 박사의 시는 이를 아프리카 초원에서 구현하지만
가젤과 사자의 충돌의 의미는 곧 전쟁과 평화, 식민과 해방, 산업과 혁신으로 확장됨을 일 깨우고 있는 것이다
정반합의 구조는 부족의 생존에서 시작해, 제국의 흥망, 민주혁명, 21세기 세계화까지로 이어진다.
따라서 이 시는 단순한 자연시가 아니다 세계사의 함축의
자연 속에서의 질주하는 시의 본질이며 역사이며 문명의 흐름을 꿰뚫어 보는 결정체의
또 다른 혁명의 시이며
세계를 아우르는 개혁의 대 서사시이므로
이 시는 평론할 수 없다. 다만 큰 뜻을 전달하려는 의지를 담았을 뿐이다.
이 한 편의 대 서사시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톰슨가젤의 숨결과
시인의 숨소리가 느껴질 뿐이다
결론의 톰슨가젤의 움틈은 부끄러움 없는 세계문학의 성취이다
《삶의 교시 아프리카 톰슨가젤의 야망》은 단순한 서정시가 아니다. 정반합의 대서사시다.
가젤은 정, 사자는 반, 질주는 합체이다
그리고 열정의 “업보”는 그 합을 필연으로 창작하는 거인의 숨결이 움터 나오는 것이다
엄창섭 박사님의
숨겨 놓으신 걸작품을 오래전에 새겨진
그 아프리카와 세계를 향한 질주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자연을 통해 철학을, 철학을 통해 세계사를 통해 인간을 연결하는 학문적 통찰의 깊은 한 수의 숨겨 둔 것을 찾아낸 것이다
이 시는 아프리카에서 시작해 유럽과 인류 전체를 아우르는 세계 문학의 위상을 톰슨가젤의 야망의 시 한 편으로 증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