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빈치 최후의 만찬"을 "고흐의 최후의 만찬"으로
시인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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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밤의 카페테라스를 최후의 만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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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고흐 밤의 카페테라스
화려한 황금빛 추녀와 벽체가 보인다.
고흐는 작품 속 천국을 황금색으로 묘사하였다.
호산나 외치던 예수의 길 위에
종려나무 가지를 밟으며 입성하였다.
환호의 인파와 박수갈채 속에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예수를 고흐는 그림에 재현시켰다. 또 다른 발상은 열두 제자를 테이블에 않게 하시고, 중앙에 흰옷 입은 키가 큰 예수가 말을 하는 듯 표현하였다.
고흐의 그림은 앉아있던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의 예수"가
아니었다.
황금빛 추녀밑에서 천국의 카페에서 설교하시는 예수를 표현하였다.
예루살렘 입성할 때에 장면과는 또 다른 신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신비로운 고흐의 발상
그림을 보면 고흐의 맑고, 밝은 천국의 세계를 황금빛 추녀와 벽으로 활발하게 그려냈다.
고난과, 역경은 더 이상 병들고, 아픈 고흐가 아니었다.
영혼의 샤워를 마친 고흐의 정신세계가
마지막 혼신을 다한 위대한 명작을 남겼다.
역경과, 고난을 통하여 불후의 명작이 탄생한 것이다.
고흐의 "최후의 만찬"은 그림 앞에서 감동과, 감화의 물결이 천국의 카페테라스에서 밝은 모습을 보여준
고흐의 그림은 신앙의 힘으로
이겨낸 승리의 결과물이다.
하늘의 별을 크게 그렸고, 파란 하늘
큰 별을 가깝게 보이는 원근법으로
그림 속에 별은 더 크고, 아름답다.
고흐의 본모습을 되찾은 작품으로 재 평가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단순하게 화려한 그림과, 원색의 입체파 그림으로만 보아왔던 카페테라스 단순한 고흐의 작품으로 보던 그림을
넘어서 고흐가 맑은 정신을 되찾고,
"고흐의 최후의 만찬"으로 그린 그림이다.
카페테라스 작품을 고흐의 방식으로 끌어들인 "고흐의 최후의 만찬"으로
새롭게 재평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예수와 열두 제자가 앉아있는 그림이라면
황금빛 추녀와 황금빛 벽을 보면서 서 서 계시는 예수는 더 이상 고난의 예수가 아닌 부활하여 열두 제자를 천국으로 초대한 예수이다.
고흐의 위대한 신앙심의 결과이며
따라서 이 그림은 셀레미 요양원에 갇혀있던 나약하고, 병든 고흐가 아니었다.
태호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이 그림을 그릴 때에 정신이 맑았다고, 고백하였다.
고흐가 숨겨둔 또 하나의 불후의 명작을 보는 것이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속에 앉아있던 예수와 제자들을 고흐는 위대한 신앙의 힘으로 은밀하게 그림 속에 끌어들인 것이다. 황금빛 추녀와 벽을 천국의 황금색으로 표현하였다.
당나귀는 예수를 태우고
고흐의 카페테라스에 함께 왔다.
당나귀에 그림도 자세히 보면 그림에 보이는 것처럼 당나귀는 카페에 있는 예수와
열두 제자를 응시하며 서있다.
테라스에서 검은 옷 입은 유다가 카페에서 나가고 있다.
가룟 유다의 나가는 모습 속에도 배신했던 유다가 문을 열고 나가는 검은 옷을 입은 유다를 볼 수 있다.
당나귀 옆에 노란 붓터치가 보인다.
별이 당나귀 뒤에서 후광의 빛으로 오신 예수를 부각하고 있다.
다빈치 최후의 만찬에 앉아있던 그림에서 고흐의 의도대로 앉아있는 제자와 흰옷 입고, 중앙에 서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천국에 대하여 설교하는 듯
제자들 중앙에 서 계신다.
하늘은 푸르고, 별도 화려하게 빛난다.
멀리 종탑이 보이고 창문도 십자가가
그려 있다.
밤하늘이 화려하고 밝게 빛나는 것은
고흐의 정신세계를 위대한 신앙으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작품에서 고흐는 트레이드 마크 노란색을 황금빛 천국으로 승화시켰다.
고흐가 "카페테라스"를 그리기 전에
동생 태호에게 나는 신앙심이 대단히 필요했다고 카페테라스 그림을 그릴 즈음에 벅찬 심정을 전하였다.
그 작품의 완성이 고흐의
" 밤의 카페테라스" 그림이다.
고흐가 은밀하게 최후의 만찬을 끌어내어 그림에 담아낸 것이다.
이 그림은 고흐의 또 다른 신세계 불후의 명작으로 "카페테라스"가 아닌
"고흐의 최후의 만찬"
으로 불러도 부족함이 없는 완성도 높은 명품이다.
카페테라스 데크와 광장 통로의 붉은색은 세상죄를 대신하여 흘리신 예수의 보혈의 피를 상징한다. 파란 하늘과 보라색 하늘이 신비로움을 더한다
원제: 반 고흐의
"밤의 카페테라스"를
"고흐의 최후의 만찬"으로 재조명하는
박성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