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문학박사 정근옥 시인의 백 년의 신화》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화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



《정근옥 시인의 - "백 년의 신화"》



〈백 년의 신화〉

2016년 이중섭 그림전을 보면서


정근옥 시인 시


서귀포 바닷가에 아이들은

물고기를 만지며 슬픔도 모르고

놀고 있다


캔버스가 없어도 서러움은 없어

골판지와 은박지 위에

미친 듯이 그의 붓은 춤추었다


바다와 산을 닮은 색조,

긴박하게 춤추면

철딱서니 없는 아이들은


푸른 하늘 바라보는 게 한 마리를

들고뛰어 놀다가

순박하게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


거리에서는 종려나무

바람에 몹시 흔들리던 날


달 속에 놀던 까마귀는

예언의 종소리를 울리며

서산을 넘고 있다


짙은 포옹의 따스한 입김을 남기고

아내는 현해탄을 넘어 떠나고

아이들도 바람에 쫓겨간 저녁노을처럼 떠나고


뱃길 가르고 떠나간 바다만

쉴 새 없이 철썩거리는데


자식이 없는 여름은 슬프기만 하다


구름 위에 떠다니는 영혼,

백 년 신화, 뭇별이 되어

찬란히 빛나고 있다



〈백 년의 신화>


이중섭의 화폭을 옮긴 시적 영상


<그림에서 시로,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전이>


정근옥 시인의 〈백 년의 신화〉는 단순한 서정시가 아니다. 이 작품은 2016년 열렸던 **이중섭 전(展)**에서 시인이 직접 그림을 바라보며, 그 순간의 감흥과 영상들을 언어로 번역해 낸 ‘시적 기록’이다. 따라서 이 시는 회화에서 출발하여 시에 이르는 매체 간 전이의 산물이다 동시에 이중섭 화가의 삶과 고통, 그리고 그가 남긴 그림 속 신화적 생명력을 영화적 시퀀스로 재구성한 작품으로 시작한다


특히 이 시는 단순한 묘사에 머물지 않고, **‘영화처럼 흘러가는 장면들’**을 병렬적으로 제시하였다. 아이들의 웃음, 종려나무 흔들리는 거리, 까마귀의 비상, 아내와 아이들의 이별, 끝없이 부서지는 바다, 그리고 마지막에 도달하는 ‘백 년의 신화’라는 초월적 이미지까지 이는 그림을 단일 정지 화면으로 본 것이 아니다

움직이는 영상으로 체험한 시인의 눈을 그대로 전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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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첫 장면 아이들의 순진한 웃음>


첫 구절은 “서귀포 바닷가에 아이들은 / 물고기를 만지며 슬픔도 모르고 / 놀고 있다”이다.

이 장면은 곧바로 이중섭의 대표작인 〈아이들과 물고기와 게〉, 〈아이들〉, 〈물고기〉 연작을 환기시킨다. 시인은 이 장면을 통해 순수와 생명의 세계를 열어젖힌다. 아이들은 물고기를 만지며 놀이에 빠져 들었다.

아이들의 표정에는 삶의 비극, 가족의 이산, 가난의 슬픔이 전혀 없다. 오히려 슬픔을 모른 채 살아가는 무구(無垢)의 세계를 펼치고 있다.


이는 곧 예술의 원초적 생명력을 상징한다. 아이들이 물고기를 잡고 노는 모습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다

예술의 근원인 자연과 생명에 대한 감각을 드러내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정근옥 시인은 이중섭의 화폭을 언어로 번역하면서, 그 속에 담긴 생명의 원형적 장면을 정확히 포착해 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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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가 없어도 춤추는 붓>


“캔버스가 없어도 서러움은 없어 / 골판지와 은박지 위에 / 미친 듯이 그의 붓은 춤추었다.”

이 대목은 이중섭 예술 세계의 가난과 광기, 그리고 창조의 집념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 이중섭은 가난 때문에 정식 캔버스를 사용할 수 없었다. 그는 담배 은박지, 골판지, 종이 조각 등 아무 재료에나 그림을 그렸다. 그 위에 긁거나 그리거나 물감을 칠해, 독창적인 은지화(銀紙畵)를 창출해 내었다.


시인은 이 장면을 “서러움은 없어”라는 구절로 풀어내었다.

즉, 예술가는 가난에도 굴하지 않고, 오히려 제약을 창조로 전환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은박지 위의 춤추는 붓은 단순히 재료의 한계를 극복한 것이 아니다 예술혼이 폭발하는 광기의 리듬을 상징하는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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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웃음과 하얀 이>


중반부에 시인은 “푸른 하늘 바라보는 게 한 마리를 / 들고뛰어 놀다가 / 순박하게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라고 쓴다.


여기서 ‘하얀 이’는 이중섭의 아이들이 지닌 순수한 치아의 웃음을 상징한다. 그림 속 아이들은 대체로 환하게 웃고, 천진난만한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시인은 그림 속 아이의 웃음을 ‘하얀 이’라는 구체적 이미지로 형상화하였다. 이는 이중섭 그림의 미학을 단순한 시각적 묘사를 넘어, 감각적 디테일로 살려내는 시적 포착의 순간이다.

렌즈를 통한 순간의 포착물을

찰카닥-찰카닥 누르는 사진작가의 손의 셔터처럼 시는 영화의 필름이 매 순간마다

돌아가듯이 써내려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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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와 종려나무, 그리고 까마귀>


“거리에서는 종려나무 / 바람에 몹시 흔들리던 날”

“달 속에 놀던 까마귀는 / 예언의 종소리를 울리며 / 서산을 넘고 있다”


이 장면은 이중섭 그림의 자연과 상징적 동물 이미지를 동시에 불러내는 순간이다. 종려나무는 서귀포의 풍경을 상징하는 현실적 장치이고, 까마귀는 불길하지만 동시에 예언적 존재로도 등장한다.


이 장면은 영화의 몽타주처럼, 현실과 상징을 교차시킨다. 흔들리는 종려나무는 가난과 불안정한 삶을, 까마귀의 비상은 이별과 죽음을 예고하는 종소리로 해석되었다.

이는 곧 이중섭의 삶 자체를 함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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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아이들의 이별>


“짙은 포옹의 따스한 입김을 남기고 / 아내는 현해탄을 넘어 떠나고 / 아이들도 바람에 쫓겨간 저녁노을처럼 떠나고”


여기서 시인은 이중섭 삶의 가장 비극적인 장면을 재현한 것으로 화가는 가난과 질병으로 인해 아내와 아이들을 일본으로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끝내 가족을 만나지 못한 채 요절하였다.


정근옥 시인은 이 장면을 저녁노을에 비유한다. 아이들이 떠나는 모습은 저녁노을처럼 붉고 찬란하지만, 동시에 사라져 가는 빛처럼 덧없다. 이 장면은 회화적이면서도 시적으로, 가족의 상실이라는 영원한 비극을 선명히 각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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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바다, 고독의 울림>


“뱃길 가르고 떠나간 바다만 / 쉴 새 없이 철썩거리는데”

“자식이 없는 여름은 슬프기만 하다”


여기서 시인은 단순한 묘사를 넘어, 시간과 계절의 상실을 붙잡는다.

떠난 가족의 빈자리를 메우는 것은 끝없이 부서지는 바다의 파도 소리뿐이다. 그리고 남겨진 것은 “자식이 없는 여름”이라는 절망이다.


이중섭은 가족과의 단절, 가난, 병마 속에서 고독하게 생을 마쳤다.

이 장면은 그림을 넘어 화가의 실제 삶과 직결되며, 시인은 그것을 언어로 꿰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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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

백 년의 신화


마지막 구절은 “구름 위에 떠다니는 영혼, / 백 년 신화, 뭇별이 되어 / 찬란히 빛나고 있다”이다.


이 대목은 이 시 전체의 종착지이다 이중섭 예술의 불멸성을 선언한다. 생전에는 가난과 병마, 가족의 상실로 고통받았지만, 그의 그림은 시간이 흘러 백 년 신화가 된 것이다. 그는 이제 뭇별처럼 밤하늘에서 찬란히 빛난다.


정근옥 시인은 그림을 단순히 본 것이 아니다

그림 속에 깃든 화가의 생애와 영혼을 꿰뚫어 보고 있다. 따라서 결말은 단순한 회상이나 감상이 아니라, 예술 불멸에 대한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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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 의의 영화적 몽타주와 회화적 언어>


〈백 년의 신화〉는 장면이 끊임없이 교차한다. 아이들의 웃음에서 종려나무, 까마귀, 아내와 아이들의 이별, 바다, 그리고 영혼의 초월로 이어지는 전개는 마치 영화의 장면 전환(몽타주) 같다.


또한 이 시는 색채와 질감을 직접적으로 언어화했다. “바다와 산을 닮은 색조”, “골판지와 은박지”, “하얀 이”, “저녁노을”, “뭇별” 등은 모두 그림의 시각적 요소를 언어의 감각으로 전환한 시적 성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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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이중섭 화가와 정근옥 시인의

두 예술혼의 만남


〈백 년의 신화〉는 정근옥 시인이 이중섭 그림을 본 감동을 단순히 묘사한 시가 아니다.

그것은 이중섭 화가의 생애와 그림 속 세계를 영화처럼 재편집하여, 시라는 또 다른 언어로 옮겨놓은 예술적 번역 작업이다.


이중섭의 화폭 속 아이들과 가족, 고독과 상실, 바다와 별빛들아 정근옥 시인의 시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시인은 그림의 이미지와 화가의 생애를 중첩시켜, 하나의 시적 다큐멘터리를 완성한 셈이다.


따라서 〈백 년의 신화〉는 단순한 헌시가 아니다 이중섭 예술의 신화적 불멸성을 확인한 문학적 기념비로 보는 것이다

이 시는 그림과 시, 미술과 문학, 개인의 고통과 인류적 신화를 교차시키었다

앞으로도 긴 세월 동안 이중섭 화가를 기억하게 하는 하나의 시적 증언으로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명작으로서 그림의 신세계 속에서 영화 같은 시세계를 보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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