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조 선생님의 ~ 사람아, 사랑아》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평론가-

《김남조 선생님의 사람아,

사랑아》




〈사람아, 사람아〉

김남조 시인 시


사랑 안 되고

사랑의 고백 더욱 안 된다면서


긴 세월 살고 나서

사랑 된다 사랑의 고백 무한정 된다는


이 즈음에 이르렀다


사막의 밤의 행군처럼

길게 줄지어 걸어가는 사람들


그 이슬 같은 희망이

내 가슴 에이는구나


사랑 된다


많이 사랑하고 자주 고백하는 일

된다 다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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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사랑, 존재의 물음>


김남조 선생님의 시를 읽으면 우리는 늘 사랑이라는 단어 앞에 서게 된다. 그러나 그 사랑은 감상적이지 않았다.

그것은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힘이다

인간 존재를 묶어두는 근원이다.

〈사람아, 사람아〉는 김남조 시인이 평생 탐구한 사랑의 시학을 함축한 작품이다.

이 짧은 시 속에는 부정에서 긍정으로 나아가는 변증법, 고통을 뚫고 희망에 도달하는 신앙적 확신, 그리고 한국 현대사의 상흔과 치유가 함께 녹아 있다.


구절별 세밀한 분석


“사랑 안 되고”라는 첫 구절은 시인의 체험에서 나온 체념이다.

그것은 단순한 개인적 좌절이 아니다 한국전쟁과 분단이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사랑이 얼마나 불가능하게 느껴졌는지를 드러낸다.

이어지는 “사랑의 고백 더욱 안 된다면서”라는 구절은 사랑을 표현조차 할 수 없는 억압된 상황을 암시하였다.


그러나 시는 바로 뒤에서 전환을 맞는다. “긴 세월 살고 나서 / 사랑 된다

사랑의 고백 무한정 된다는” 구절은 삶의 농도와 세월의 깊이가 만들어낸 새로운 확신을 보여주었다. 고통과 좌절을 지나온 후에야 사랑은 가능해진다

고백은 무한히 열리게 되었다.

이 과정은 부정-경험-긍정의 삼단 구조로, 마치 헤겔적 정반합처럼 인간 존재가 성숙해 가는 길을 형상화하였다.


“사막의 밤의 행군처럼 / 길게 줄지어 걸어가는 사람들”은 개인적 체험을 넘어선 집단적 이미지다.

전쟁과 피란의 기억, 고난을 함께 짊어진 민족의 행렬이 여기에 겹쳐진다.

이때 사랑은 단순히 개인 간의 감정이 아니다

고난을 견디게 하는 인류 보편의 동력이 되는 것이다.


“그 이슬 같은 희망이 / 내 가슴 에이는구나”는 절망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희망을 드러내었다.

이슬은 작고 연약하지만, 새벽마다 어김없이 맺힌다 황량한 사막과 대비되는 이슬의 이미지는 고통 속에서 발견되는 구원의 징표로 증언한다.


마지막 구절 “된다 다 된다”는 시 전체의 결론이자 절대적 선언이다.

반복을 통해 강조되는 이 단호한 긍정은 시인의 삶 전체가 도달한 종착점이기도 하다.


<문학사적 맥락>


김소월의 사랑 시는 정한 과 떠남의 노래였다.

윤동주의 사랑은 민족과 순수의 고뇌 속에 묻혀 있었다. 그러나 김남조 시인의 사랑은 절망을 뚫고 도달한 긍정으로 평가되었다 시인은 좌절의 자리에 멈추지 않고 끝내 희망과 구원으로 나아갔다.

이 점에서는 한국 사랑 시 전통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였다.


박목월과 서정주가 자연과 운명 속에서 사랑을 노래했다면, 김남조 시인은 더 직접적이고 존재론적인 차원에서 사랑을 붙잡았다.

전후 한국시가 대체로 상실과 분단, 절망을 노래할 때, 시인은 사랑을 통한 치유와 구원을 강조하였다.


<여성문학적 관점>


〈사람아, 사람아〉는 여성 시인의 목소리를 강하게 담아낸 작품이기도 하다. 김남조 시인은 억압과 상처 속에서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다. 사랑은 그녀에게 단순히 감정이 아니라, 생존과 구원의 힘이었다.

남성 중심의 한국 문단에서, 시인은 끝내 사랑의 언어를 통해 여성적 목소리를 확장하였다.

이 시의 “된다 다 된다”는 선언은 단순히 사랑의 가능성만이 아니었다

여성적 존재의 힘과 생존의 긍정으로도 읽히는 것이다.


<동시대 문학과의 비교>


김수영이 자유와 혁명을, 박재삼이 서정적 고독을 노래하던 시대에, 김남조는 사랑을 노래하였다.

이는 시대와 불화하는 동시에 시대를 초월하는 선택이었다. 시인의 시는 정치적 함성이나 시대적 저항을 직접적으로 담지 않았지만, 오히려 절망을 뚫고 사랑을 긍정하는 길에서 더 큰 보편성을 획득하였다.


<세계문학적 연계>


김남조 시인의 시는 성경의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며 모든 것을 믿느니라”와 맥을 같이한다.

또한 릴케가 고통 속에서 발견한 영혼의 성숙, 가브리엘 마르셀이 말한 절망을 관통한 희망의 철학과도 만나고 있다. 동시에 동양 사상의 맥락에서도 연결된다. 유교가 강조한 인간적 도리와 불교가 말하는 연민과 자비의 마음은, 김남조의 사랑의 윤리와 닮아 있다.


<수용사와 비평적 의의>


김남조 시인의 시는 독자들에게 꾸준히 사랑받았다. 비평가들은 시인을

‘사랑의 시인’이라 불렀다

이 작품을 그녀의 문학 세계를 대표하는 선언으로 평가하였다. 특히 후기 시 세계에서 나타나는 단호한 긍정의 언어는, 한 시대의 상처를 치유하는 힘으로 읽혔다.


<사랑의 최종 선언>


〈사람아, 사람아〉는 단순한 사랑의 서정시가 아니다. 그것은 김남조 문학의 핵심이자 결론이다. 부정에서 출발해 긍정으로 끝나는 이 여정은, 인간 존재 전체를 긍정하는 선언으로 확장되었다. “된다 다 된다”라는 마지막 구절은 시인이 평생 추구한 주제의 결실이며, 동시에 후대에게 남긴 희망의 언어다.

이 작품은 한국 현대시의 역사 속에서, 사랑과 희망의 절대성을 증언하는 영원한 목소리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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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출생: 1927년 9월 25일, 대구


별세: 2023년 3월 9일


학력: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영어영문학과 졸업


등단: 1950년 《문예》에 〈파도〉 발표


대표 시집: 《목숨》(1953), 《사랑초서》(1962), 《정 때문에》(1968), 《사랑이라는 이유로》(1981), 《사람아, 사람아》(1993), 《너와 나의 영원》(2001) 등


수상 경력: 대한민국예술원상, 만해대상, 가톨릭문학상,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 등


문학적 의의: 한국 현대시에서 ‘사랑의 시인’으로 불리며, 고난과 절망을 끝내 사랑과 희망으로 승화시킨 대표적 시인. 단순한 언어 속에 존재론적 깊이를 담아내며, 한국 사랑 시의 지평을 확장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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