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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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연 시인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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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의 낙엽〉
웃는 소리 아니어도
심장이 간지럼을 타고
수줍은 애교 없이도
발바닥이 화끈거린다
곱게 물들기까지 이겨 낸 시간
지는 날까지 햇살 모아
뿌리에 전하는 헌신
낙엽은 주검이 아니라 훈장이다
바스락바스락, 작은 그 외침
짓밟히는 순간조차 음악이 되고
부서진 후에도 향 전하는
길 위의 수행자
시몬, 너는 좋으냐고 왜 묻느냐
낙엽 되게 될 그대와 나
원 없이 사랑하다 맞은 가을
나란히 걷는 나무 아래에서
심장은 또 환희의 비명 따라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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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의 순환과 철학적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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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과 존재의 물음
장지연 시인의 시 〈시몬의 낙엽〉은 계절의 한 장면인 낙엽을 단순한 자연 현상으로 머물게 하지 않고, 인간의 존재와 사랑, 그리고 죽음의 의미를 되묻는 서정적·철학적 작품이다.
시 속에서 낙엽은 더 이상 쇠락과 소멸의 기호가 아니라, 삶의 마지막을 빛내는 훈장이며, 남은 이들을 향해 음악을 건네는 수행자이다.
시인은 낙엽의 순간 속에 인간의 생애 주기를 비추며, 가을이라는 계절을 ‘죽음의 예행연습’이 아니라 ‘삶의 환희와 성숙의 마무리’로 재구성한다.
《첫 번째 연》
생명의 미세한 떨림
“웃는 소리 아니어도 / 심장이 간지럼을 타고 / 수줍은 애교 없이도 / 발바닥이 화끈거린다”
이 부분은 낙엽의 가벼운 흔들림을 인간의 생리적 감각으로 치환한다. 웃음, 간지럼, 애교, 발바닥의 화끈거림은 모두 살아 있음의 즉각적인 증거들이다. 시인은 낙엽을 ‘생명의 연장선’으로 보며, 비록 그것이 떨어지는 과정일지라도 아직 심장처럼 뜨겁고, 몸처럼 반응하는 존재임을 드러낸다. 이는 하이데거가 말한 존재, 그, 자체와 연결된다.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도 존재는 여전히 현전 하며, 자기 고유의 감각을 발산한다.
《둘째 연》
낙엽의 헌신과 훈장
“곱게 물들기까지 이겨 낸 시간 / 지는 날까지 햇살 모아 / 뿌리에 전하는 헌신 / 낙엽은 주검이 아니라 훈장이다”
여기에서 낙엽은 단순한 생물학적 부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나무의 근원, 곧 뿌리를 위해 자신의 남은 자양분을 돌려보내는 헌신적 존재다.
흔히 죽음을 ‘종결’로만 보지만, 시인은 죽음을 ‘귀환’과 ‘환원’의 과정으로 바라본다.
낙엽이 뿌리로 돌아가는 이 순환은 동양 사상에서의 ‘생멸(生滅)의 윤회’와 맞닿아 있으며, 서양 철학의 ‘정반합의 운동’ 속에서 삶과 죽음이 하나의 원을 이루는 개념과도 통한다. 따라서 낙엽은 죽음의 흔적이 아니라, 삶 전체의 완결을 증언하는 훈장으로 승화되었다.
《셋째 연》
소멸 이후의 음악
“바스락바스락, 작은 그 외침 / 짓밟히는 순간조차 음악이 되고 / 부서진 후에도 향 전하는 / 길 위의 수행자”
이 대목은 낙엽의 ‘죽음 이후의 존재 방식’을 그린다.
밟히는 소리조차 음악이 되고, 부서진 후에도 향기를 전하는 낙엽은, 고통과 소멸을 겪으면서도 나의 존재가 끝나더라도 그 흔적은 타자의 감각 속에 남으며, 죽음 이후에도 책임과 흔적은 계속된다.
낙엽은 수행자처럼 마지막까지 길 위에서 메시지를 전하는 ‘철학적 상징’으로 확장된다.
《넷째 연》
시몬을 향한 물음
“시몬, 너는 좋으냐고 왜 묻느냐”
여기서 시인은 ‘시몬’이라는 이름을 불러낸다.
이는 특정 개인이자 동시에 ‘모든 인간’을 가리키는 보편적 호명이다. 죽음을 앞둔 존재에게 “좋으냐”라고 묻는 것은 어쩌면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시인은 묻는다. 이는 삶과 죽음의 과정 속에서 즐거움과 충만함을 찾을 수 있는지에 대한 궁극적 물음이다.
삶의 끝자락에서조차 기쁨을 누릴 수 있는가?
시인의 물음은 운명을 사랑하라는 니체의 사유와도 마주한다.
《 다섯째 연》
사랑과 환희의 순환
“낙엽 되게 될 그대와 나 / 원 없이 사랑하다 맞은 가을 / 나란히 걷는 나무 아래에서 / 심장은 또 환희의 비명 따라 뛴다”
마지막 연에서 낙엽은 곧 인간 자신으로 전환된다.
인간 역시 언젠가 낙엽처럼 지게 되지만, 중요한 것은 ‘원 없이 사랑하다 맞은 가을’이라는 전제이다. 죽음은 사랑의 결실을 품은 계절의 마무리이며, 심장은 끝내 환희로 뛴다. 여기서 시인은 죽음을 비극적 결말이 아니라 ‘사랑의 완성’으로 재해석한다.
계절의 순환처럼, 죽음은 끝이 아니라 다음 생을 위한 환원이며, 사랑으로 충만한 종결이다.
《계절의 철학 가을과 순환의 은유》
이 시에서 가을은 단순한 계절이 아니라 ‘순환과 환원의 철학’을 상징한다.
봄은 시작, 여름은 성숙, 가을은 환원, 겨울은 휴식의 과정이다.
특히 가을은 열매와 색을 맺고, 그 결실을 뿌리와 타자에게 돌려주는 시기다.
이는 인간의 생애 주기와도 같다. 청년기의 열정, 장년기의 성취, 노년기의 환원과 나눔은 모두 하나의 순환 구조 속에 놓여 있다.
시인은 낙엽을 통해 바로 이 순환의 철학을 구현한다.
《죽음과 사랑의 동일성》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죽음과 사랑을 동일한 궤도로 묶었다는 점이다. 낙엽은 죽음을 상징하지만, 동시에 사랑의 결실이다. 죽음이란 ‘사랑을 다한 뒤의 마무리’이며, 사랑은 ‘죽음을 두려움이 아닌 환희로 바꾸는 힘’이다.
이는 기독교 신학의 사랑의 윤리, 불교의 무상(無常)의 사상, 그리고 동서양 철학이 만나는 접점에서 유효하다.
《결론》
낙엽의 존재론적 의미
〈시몬의 낙엽〉은 가을의 낙엽이라는 작은 자연 현상을 통해, 인간의 삶과 죽음, 사랑과 환희, 그리고 순환의 철학을 담아낸 작품이다.
시인은 낙엽을 소멸이 아니라 훈장으로, 주검이 아니라 음악으로, 죽음이 아니라 사랑의 환희로 노래하였다.
계절의 순환은 결국 인간 존재의 순환이며, 그 끝에서 우리는 ‘낙엽처럼 아름다운 죽음’을 맞을 수 있음을 시는 속삭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