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두익 시인 시-익살스럽네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박두익 시인 시

〈익살스럽네〉


주택가 승용차

스피드 내지 마세요

왜 소리 질러요?


왜 전화해도 안 받고

문자 보내도 답이 없어요?


그동안 오래 들었던

자동차 보험 해약합니다


‘성을 내어도 안 무서워요

성질이 고약한 줄 아니까’


헬스장 선풍기

운동 끝나면 꺼야

되는 것 아니요

당신이 통반장입니까?


모두가 익살스러운 표현이네요


《작품의 형식과 배경》


박두익 시인의 〈익살스럽네〉는 전통적인 정형시의 틀보다는 산문시적 자유 형식을 취한다.

이 글은 신문 칼럼의 형식으로 게재되었지만, 내포하고 있는 어조와 구성이 분명히 시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일상의 불편과 소소한 갈등을 풍자와 익살로 풀어낸 생활시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생활 시는 특정한 주제 의식을 미학적 장치보다 직설적 언어와 생활 현장의 발화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구비문학이나 현대 희곡의 짧은 대사와도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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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연》

속도와 소음에 대한 풍자


> “주택가 승용차 / 스피드 내지 마세요 / 왜 소리 질러요?”




작품은 첫머리부터 일상 공간의 갈등을 다룬다.

주택가는 원래 사적 평온과 휴식의 공간이어야 하지만, 과속 차량의 소음과 위험성은 그 공간의 질서를 위협한다. 화자는 단순한 항의가 아니라

“왜 소리 질러요?”라는 되물음을 통해, 불합리한 상황에 대한 풍자적 뉘앙스를 형성한다.

즉, 단순히 자동차 소음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누구에게 소리를 지르는가”라는 사회적 권력관계를 묻는 것이다.

이는 소시민의 목소리가 억눌린 현실에서, 오히려 강자가 약자에게 역으로 화를 내는 모순된 구조를 풍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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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연》

단절된 소통의 일상


> “왜 전화해도 안 받고 / 문자 보내도 답이 없어요?”




여기서는 현대 사회의 소통 부재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기술적으로는 수많은 소통 수단이 존재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회피, 무시, 무관심으로 인해 인간적 교류의 단절이 심화된다.

이 구절은 단순히 개인적 불편을 넘어, 디지털 시대에 인간관계가 얼마나 취약하게 변했는지를 지적하는 풍자적 장치로 읽힌다.

‘문자 답변 없음’이라는 사소한 경험이 사실은 현대 사회의 고립과 무정함을 압축적으로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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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연》

보험 해약의 은유


> “그동안 오래 들었던 / 자동차 보험 해약합니다”




이 표현은 겉으로는 경제적 계약 관계의 종료를 말하지만, 깊게 읽으면 인간관계의 파기라는 은유적 의미를 담고 있다.

오랜 기간 유지해 온 관계나 약속이 더 이상 가치 없을 때, 그것은 마치 보험을 해약하듯 깔끔히 정리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익 중심의 인간관계, 즉 “필요할 때만 유지하다가 필요 없으면 끊어버리는” 현대인의 관계 양태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스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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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연》

성격과 두려움의 전도


> “‘성을 내어도 안 무서워요 / 성질이 고약한 줄 아니까’”




여기서는 풍자가 더욱 날카로워진다.

흔히 성내는 사람은 주변에 공포를 조성하지만, 화자는 “이미 성질이 고약한 줄 아니까

안 무섭다”라고 말한다.

즉, 권위와 위압이 더 이상 위협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조롱거리로 전락했음을 드러낸다.

이는 권력자의 언행 무력화를 풍자적으로 표현한 부분이다. 사회적 지위나 힘을 가진 자가 고함을 질러도, 그 고약한 본성이 이미 알려져 있다면 사람들은 두려움보다 냉소와 비웃음으로 반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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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연》

생활공간의 질서


> “헬스장 선풍기 / 운동 끝나면 꺼야 되는 것 아니요?”




헬스장이라는 공간은 근대적 공동체의 축소판이다.

그 안에서 작은 규칙과 배려가 필요하다. 그러나 화자는 선풍기를 켜놓고 나가는 무책임을 꼬집는다. 이는 단순한 전기 낭비를 넘어, 공공 규칙을 지키지 않는 무책임한 태도를 상징한다.

풍자의 대상은 “사소한 규칙조차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며, 이는 사회 전반의 도덕적 해이와 무질서를 드러내는 일상적 메타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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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연》

권력과 감시의 과잉


> “당신이 통반장입니까?”




이 짧은 한 줄은 작품 전체에서 가장 직설적이고 날카로운 풍자다.

‘통반장’은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주민 통제를 상징하는 존재였다.

화자는 “사소한 일까지 간섭하고 감시하는 태도”를 그 시절의 통반장에 빗대어 비판한다.

이는 사적 공간에 대한 과도한 간섭, 사람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일상적 권위주의를 비꼰 표현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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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연》

제목과의 상응


“모두가 익살스러운 표현이네요”




종결부는 작품의 핵심이다.

화자가 쏟아낸 불만과 풍자가 결국 “익살스럽다”라는 말로 포장된다.

이는 곧 분노의 직접적 폭발 대신, 풍자와 웃음을 통해 비판을 완성하는 방식이다.

한국적 해학 전통과 맞닿아 있으며, “웃음을 통한 저항”이라는 미학적 의미를 갖는다.

즉, 사회적 모순과 불편을 ‘정색한 고발’이 아니라

‘해학적 표현’으로 소화하는 것이 작품의 미학적 정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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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의 본질>


이 작품은 일상적 사소함을 통해 보편적 사회 비판을 이끌어낸다.

자동차 소음, 문자 무응답, 보험 해약, 성질부리는 사람, 헬스장 선풍기, 통반장 같은 구체적 사례들이 나열되지만, 결국 모두 하나의 메시지로 수렴한다.

그것은 바로 현대 사회의 무질서, 무관심, 권위주의적 태도에 대한 풍자다.

특히, 화자가 분노하지 않고 익살로 끝맺는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해학적 저항 문학으로 분류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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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적 맥락>


〈익살스럽네〉는 현대 민중문학적 풍자 시의 맥을 잇는다. 과거 구비문학의 해학, 판소리의 풍자, 신흥희곡의 해학적 대사, 그리고 현대시의 생활 시 경향이 이 작품 속에 혼합되어 있다.

특히 신문이라는 매체에 발표되었다는 점은, 시가 문학적 전당에 갇히지 않고 대중의 언어로 사회와 호흡한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이는 박목월의 서정성, 신경림의 생활 시, 김수영의 풍자 정신과도 맥을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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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적 차원에서의 해석>


일상의 소소한 사물,

승용차, 보험, 선풍기 등은 인간 존재의 진정성을 드러내는 통로가 된다.


통반장 은유는》 권력의 미시적 통제 장치를 풍자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웃음,

분노와 항의를 웃음으로 전환시켜 권위와 억압을 무너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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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 해학의 마무리


박두익 시인의 〈익살스럽네〉는 사소한 불편과 갈등을 통해 사회적 권위, 무질서, 소통 부재를 풍자적으로 드러낸 생활 시다.

언어는 거창하지 않고 생활적이지만, 바로 그 직설적 언어 속에 현대인의 소외와 저항이 담겨 있다.

박두익 시인의 작품은 독자에게 웃음을 선사하면서도, 웃음 뒤에 숨은 사회적 긴장을 환기시킨다.

이는 곧 한국 해학 문학의 전통을 오늘날의 생활 현장에서 이어가는, 소중한 성과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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