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세 철학자 김형석 선생님께 두 번째 헌정 시》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박성진 시인 문화평론가


〈김형석 선생님께 올리는 두 번째 헌정 시〉


박성진 시인, 문화평론가


백 년을 넘겨 살아오신

선생님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하루를 더 빛나게 하는 그림자였습니다.


젊을 땐 길을 찾느라 헤매었고,

세월이 깊어질수록

길보다 사람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선생님의 삶을 통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지혜는 책 속에 가두어놓지 않았습니다.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고

그 눈물을 함께 받아낼 때

깨달음은 점점

내 안에 자리했습니다


세월이 남긴 상처는

진리로 다가왔습니다.

아픔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 아픔이

나를 사람답게 만들었습니다.


죽음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삶의 본모습을 배웠습니다.

끝은 사라짐이 아니라

사랑이 남는 순간임을

알았습니다.


선생님은 여전히 책을 펴고,

젊은이들의 웃음 속에서

배우고 계십니다.

배움은 나이를 묻지 않고,

사랑의 세월을 이겨냅니다.


선생님의 삶이 오늘 남기시는 명언은

“오늘 하루도 고맙다.

그리고 사랑한다.”



---


<역사적·철학적

평론>


<백세 철학자의 길>


김형석 철학자는 단순히 긴 세월을 산 인물이 아니다.

그는 1920년대에 태어나 21세기까지를 살아낸 한국 지성사의 산맥이다.

한 세기를 넘긴 그의 삶은 근대와 현대, 전쟁과 분단, 산업화와 민주화를 고스란히 겪어낸 시대적 거울이었다.

그가 남긴 말 한마디, 책 한 권은 곧 역사와 철학이 교차하는 장場이었다.


<청년기의 고뇌>


일제 강점기 속에서 청춘을 보낸 그는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 앞에 섰다.

윤동주가 시로써 고통을 노래했다면, 김형석은 철학으로

그 질문을 붙들었다.

이때부터 그의 철학은 삶을 위한 철학이었다.


<해방과 전쟁의 체험>


광복 이후 한국은 곧바로 분단과 전쟁의 비극을 맞았다.

그는 전쟁의 잿더미에서 인간의 존엄을 사유했다. “철학은 현실을 떠날 수 없다.” 그의 철학은 추상적 사유가 아니라, 피와 눈물 속에서 태어난 생활철학이었다.


<학문의 정착>


이화여대 교수로 활동하며 그는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철학을 가르쳤다.

그러나 강의는 단순한 학문 전달이 아니라, 삶의 지혜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학생들에게 그는 철학자가 아니라, 함께 길을 찾는 동반자였다.


<저술의 열매>


《영원과 사랑의 대화》, 《고독이라는 병》, 《백 년을 살아보니》는 그의 사유가 집약된 작품이다.

이 책들은 전문 철학서가 아닌,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생활철학의 교과서였다.

특히 《백 년을 살아보니》는 한국 사회 전역에 감동을 주며 철학의 대중화를 이루었다.


<철학의 핵심 사랑>


김형석의 철학을 관통하는 단어는 사랑이다.

그는 “남는 것은 사랑뿐”이라고 강조했다.

죽음 앞에서도 그가 남긴 말은

“오늘도 고맙고, 사랑한다.”였다.

이는 단순한 인생 훈계가 아니라, 철학적 결론이었다.


<윤동주와의 정신적 교류>


윤동주가 시로써 별을 헤며 죽음을 넘어섰다면, 김형석 선생님은 철학으로 죽음을 넘어 삶을 배우게 했다.

두 사람의 소통은 시와 철학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민족의 고통과 인간의 존엄을 함께 증언한 사건이었다.


<상처와 진리>


그의 철학은 상처를 외면하지 않았다.

오히려 상처 속에서 진리를 보았다.

전쟁, 가난, 독재, 세월이 남긴 모든 고통을 그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학교”로 여겼다.

상처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인간됨의 증거였다.


<죽음에 대한 사유>


그에게 죽음은 소멸이 아니었다.

죽음은 사랑이 남는 순간이었다.

이는 기독교 신앙과 철학적 사유가 결합된 독특한 통찰이다.

죽음이 끝이 아님을 말하는 그의 언어는 한국 사회에서 희망의 철학으로 울려 퍼졌다.


<배움의 끝은 없다>


김형석 선생님은 100세가 넘도록 강연과 집필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나이는 숫자일 뿐, 배움에는 끝이 없다”라고 말했다.

이는 청년들뿐 아니라, 모든 세대에게 끊임없는 자기 갱신의 철학을 가르쳤다.


<사회적 울림>


그의 말 한마디는 철학적 명제가 아니라, 사회적 가르침이었다. “오늘 하루를 감사하라.”

“사람을 사랑하라.”

남는 것은 사랑뿐이다.

이 짧은 언어들은 한국 사회의 윤리적 나침반이 되었다.


<지성사의 맥락>


김형석 선생님은 이어령과 함께 한국 지성계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이어령이 언어와 문화의 혁신을 통해 시대를 해석했다면, 그는 철학과 신앙의 언어로 인간의 길을 밝혔다.

두 사람의 존재는 한국 현대 지성사에서 쌍벽을 이루었다.


<철학의 생활화>


그는 철학을 대학 강단에 가두지 않았다.

대중 강연, 칼럼, 방송을 통해 철학을 생활 속의 지혜로 풀어냈다.

철학을 학문에서 삶으로 옮긴 그의 노력은, 한국 사회가 철학을 낯설지 않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동서 철학과의 대화>


그는 칸트와 니체, 하이데거를 강의하면서도 한국의 현실에 맞추어 풀었다. 그의 철학은 서양 철학을 단순히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의 삶에 맞는 해석이었다.

이 점에서 그는 ‘철학의 토착화’를 이룬 인물이다.


<사랑과 감사의 윤리>


그의 마지막 메시지는 항상 “감사와 사랑”이었다.

돈과 명예, 권력은 사라지지만, 사랑은 남는다는 가르침은 인류 보편적 윤리로 확장된다.

이는 한국 사회뿐 아니라, 세계적 차원에서도 의미를 갖는 메시지다.


<종교와 철학의 조화>


그는 기독교 신앙인으로서 철학을 했지만, 신앙과 철학을 대립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를 비추는 거울로 삼았다.

이는 동서 지성사 속에서 드문 조화이며, 철학과 신앙의 통합이라는 독창적 업적이다.


<백 년 철학의 무게>


그의 철학은 단순한 사변이 아니라, 백 년 생애 속에서 검증된 지혜였다. 따라서 그의 말은 추상이 아니라 체험으로 증명된 철학이었다.

한국 사회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역사적 위치>


김형석 철학자는 한국 현대사의 산 증인으로서, 철학을 역사와 결합시킨 인물이다.

그는 민족사의 상처와 고통을 철학으로 풀어냈고, 사랑과 감사의 언어로 위로했다.

그가 없었다면 한국 철학사는 훨씬 빈약했을 것이다.


<세계 속의 의미>


그의 철학은 한국만의 것이 아니다.

사랑과 감사의 윤리는 인류 보편의 철학적 언어다.

그의 사상은 동양과 서양을 잇는 가교로 작동하며, 세계 철학사 속에서도 독창적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마무리 글>


김형석 선생님의 철학은 곧 삶이었다.

철학을 삶에서 시작해 삶으로 끝맺은

선생님은 한국 지성사의 어른으로 남았다.

그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오늘 하루도 고맙다.

그리고 사랑한다.

” 이 짧은 언어 속에 철학의 백 년, 역사와 신앙, 지혜와 눈물이 응축되어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박두익 시인 시-익살스럽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