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
꽃무릇
보름달이 창을 스치는 밤,
알리지도 못하고 말도 못 한 채
꽃술 같은 기억을 흔들어 보지만
대답 없는 그림자만 따라 흐른다.
곧 사라질 흔적까지도
아프도록 사랑한 탓에 더욱 선명하여
그 자리에 흩어진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다.
꽃잎 깊숙이 스며 피어나도
만날 수 없어 서성이는 꽃무릇.
담장 아래 숨은 발소리,
얼굴 한 번 볼 수 없어
목멘 소리조차 닿지 못한 채
바람에 향기를 맡기고
잡아 줄 손 하나를 기다린다.
세월을 넘어 일어서도
목 긴 꽃대는 담장을 넘지 못한다는데
내 안의 빈자리는
고독처럼 서성이는 그림자뿐.
속눈썹 길게 드리운 슬픈 여인,
화사한 화장 고쳐 발라도
눈 아래 세월의 그림자는
끝내 검푸르다.
---
문학적 사유의 「꽃무릇」
---
<서론>
꽃과 사람, 만날 수 없는 사랑
꽃무릇은 참으로 기이한 꽃이다.
꽃이 필 때 잎은 자취를 감추고, 잎이 무성할 때 꽃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꽃에게 ‘만날 수 없는 인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국의 절터나 무덤가에 흔히 피어나며, 일본에서는 ‘히간바나(彼岸花)’라 하여 죽음의 길목에 선 꽃으로 불린다. 피안(彼岸)과 차 안(此岸), 저편과 이편을 잇지만 동시에 갈라놓는 존재. 꽃무릇은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 기다림과 부재의 상징으로 오래 기억되어 왔다.
이 시 「꽃무릇」은 그 운명을 그대로 담아내면서, 한 인간이 경험하는 사랑의 절절한 고독을 보여준다.
달빛과 그림자, 발소리와 향기, 화려한 화장과 검푸른 그림자. 시인은 서로 만날 수 없는 이미지들을 교차시켜, 결국 사랑이란 언제나 결핍 속에서 빛나는 것임을 말한다.
---
<1연>
달빛과 그림자의 서정
보름달이 창을 스치는 밤, 말하지 못한 사랑은 꽃술 같은 기억으로만 흔들린다.
달빛은 환하건만, 그 빛은 차갑다. 대답 없는 그림자만 흐를 뿐이다.
이 장면에서 독자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첫 장면을 본다. 사랑은 목소리를 갖지 못한 채 기억으로만 존재한다. 기억은 꽃술처럼 섬세하고 아름답지만, 아무리 흔들어 보아도 응답은 없다.
오직 그림자만이 따라 흐른다.
그림자는 타자의 부재를 보여준다. 레비나스의 말처럼 타자는 언제나 나와 함께 있으면서 동시에 무한히 멀다.
시인의 사랑은 바로 이 그림자 같은 타자와의 거리를 응시하는 일이다.
---
<2연>
흔적의 선명함과 엇갈린 운명
사라질 흔적까지도 아프게 사랑했기에 더 선명하다.
그러나 그 선명함은 만나지 못함의 고통일 뿐이다. 꽃잎이 깊숙이 피어나도, 꽃무릇은 끝내 서성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꽃무릇의 생태와 같다.
꽃과 잎은 서로를 사랑하듯 의지하지만, 결코 같은 시간에 만날 수 없다. 사랑은 늘 엇갈린다. 한쪽이 다가가면 다른 쪽은 이미 사라진다.
사랑이란 본래 완성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완벽히 만나는 순간은 없고, 늘 조금씩 비껴가며, 그 비껴감 속에서 오히려 더 강렬히 기억된다.
꽃무릇이 피어나는 순간, 그 자리에 없는 잎이 오히려 꽃의 생명을 증명하듯이.
---
<3연>
발소리, 향기, 닿지 못한 손
담장 아래서 발소리가 스민다.
그러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목멘 소리도 닿지 못하고, 남은 것은 향기뿐이다. 바람에 흩날린 향기가 사랑의 흔적을 대신한다.
향기는 잡히지 않는다.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분명히 존재한다.
시인은 그 향기를 통해 부재한 연인을 감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실체 없는 증거일 뿐, 만남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여기서 떠오르는 꽃무릇의 꽃말은 “죽어서야 만날 수 있는 인연”이다. 살아서는 닿지 못하고, 향기처럼 멀리 흩어져야만 감각된다. 잡아 줄 손 하나를 기다리지만, 그 손은 끝내 오지 않는다. 사랑은 언제나 기다림 속에서만 완성되는 셈이다.
---
<4연>
세월과 고독의 담장
세월을 넘어 일어섰으나, 목 긴 꽃대는 담장을 넘지 못한다.
시인의 내면에도 빈자리가 남아, 고독처럼 그림자가 서성인다.
꽃무릇의 긴 꽃대는 하늘을 향해 솟구치지만, 그 앞에는 담장이 있다.
아무리 뻗어 올라가도 넘지 못한다.
이것은 삶이 가진 운명적 한계다. 우리는 사랑을 향해, 삶을 향해 끊임없이 뻗어 나가지만, 끝내 닿지 못하는 벽이 있다.
그 벽 앞에 남는 것은 빈자리와 그림자뿐이다. 그림자는 사라진 타자의 흔적이고, 빈자리는 채워지지 않는 사랑의 상흔이다. 고독은 그렇게 우리 안에 서성인다.
---
<5연>
여인의 형상과 검푸른 그림자
마지막 연에서 꽃무릇은 여인의 얼굴을 얻는다.
속눈썹 길게 드리운 슬픈 여인. 아무리 화사한 화장으로 얼굴을 가꿔도, 세월이 새긴 그림자는 지울 수 없다.
눈 아래 드리운 그늘은 끝내 검푸르다.
꽃무릇의 붉은 꽃잎은 화사하다.
그러나 그 속에는 검푸른 어둠이 깃들어 있다.
이중성, 바로 그것이 꽃무릇의 본질이다. 화려함과 슬픔, 생명과 죽음, 사랑과 이별이 한 몸 안에 공존한다.
시인은 꽃무릇을 슬픈 여인으로 의인화하면서, 사랑의 본질을 드러낸다. 아무리 치장해도, 세월이 새긴 그늘은 지워지지 않는다. 사랑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상처로 남는다.
---
<비교와 확장>
다른 문화 속의 꽃무릇
일본에서 꽃무릇은 ‘히간바나’라 불린다. 저편 세계로 떠나는 영혼을 인도하는 꽃. 무덤가에 피어나 죽음을 상징하는 꽃. 한국에서 또한 ‘길목의 꽃’, ‘슬픔의 꽃’으로 불려 왔다.
서양 문학에도 이와 비슷한 꽃의 상징이 있다. 나르키소스 신화의 수선화는 자기애와 죽음을, 카멜리아는 단절된 사랑을, 붉은 장미는 아름다움과 동시에 상처를 상징한다. 꽃무릇은 이 모든 것과 닮아 있으면서도, 더욱 한국적인 정조 기다림과 한(恨)의 정서를 응축한다.
---
철학적 사유
꽃무릇이 남긴 물음
꽃무릇은 부재 속에서 더 강렬히 현존한다. 이는 현상학적 사유와 닮았다.
없는 것이 오히려 더 선명하게 다가오는 경험.
레비나스는 언제나 응답할 수 없는 얼굴이라고 말했다. 꽃무릇의 사랑은 바로 그런 타자와의 관계다. 응답은 없지만, 그 응답 없는 자리에서 우리는 더욱 강렬히 사랑한다.
또한 바타유가 말했듯, 아름다움은 죽음과 결코 떨어져 있지 않다. 붉게 타오르는 꽃무릇은 그 자체로 에로스와 죽음이 교차하는 현장이다.
---
<결론의 꽃무릇>
사랑의 운명, 인간의 비극
「꽃무릇」은 한 송이 꽃을 통해 사랑과 고독, 삶과 죽음의 본질을 응시하는 시다.
달빛과 그림자, 발소리와 향기, 화려한 화장과 검푸른 그림자. 이 모든 대비는 결국 하나의 진실을 가리킨다.
사랑은 언제나 결핍 속에서 존재한다.
꽃과 잎이 함께하지 못하는 꽃무릇처럼, 우리의 사랑도 끝내 완전히 만나지 못한다. 그러나 그 엇갈림 속에서 오히려 사랑은 더 강렬히 빛난다.
기다림과 부재, 고독과 상처 속에서 피어난 사랑. 그것이 꽃무릇이 우리에게 전하는 깊은 사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