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의 저녁--- 소크라테스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


다정 이인애 시


철학자의 저녁

소크라테스



저녁노을 앞에 서서

허공을 응시하는

소크라테스의 눈길은

결코 공허하지 않다


고독이란 바탕 위에

진리와 정의로움으로

씨줄 날줄을 엮어

아름다움 보람 진실이라는

심오한 철학의 얼개를 짜던 그


때론 흐르는 물소리와

돌담에 스치는 바람으로도

철학을 구성하는 요소였다


번민을 밀어내고 우뚝 선

오랜 깨우침의 완성

죽음의 그림자조차 두렵지 않은

충만한 기쁨이 한 가득히

저녁 식탁에 놓인다


그의 두 눈동자에서 빛나던

진리의 별 하나가 등불 되어

오늘, 온 세상을 밝게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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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에세이,

소크라테스의 저녁을 읽는 사유의 평>


<저녁이라는 상징적 시간>


저녁은 하루의 끝이자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는 경계의 시간이다. 소크라테스가 서 있는 무대가 저녁노을이라는 사실은 중요하다. 낮의 분주함이 사라지고, 어둠이 서서히 찾아오는 그 시점은 인간이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다. 시인이 선택한 ‘저녁’은 곧 철학의 시간이다. 플라톤의 대화편들 또한 이러한 전환의 순간,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허공의 응시와 공허하지 않은 눈길>


허공을 응시한다는 행위는 표면적으로는 무의미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시인은 그것이 ‘결코 공허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이는 소크라테스 철학의 정수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 즉 ‘이데아’를 향한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허공은 비어 있으나, 동시에 무한한 사유의 공간이다. 그의 응시는 공허가 아니라, 진리 탐구의 풍요로움이었다.


<고독의 바탕 위에 직조된 철학>


시에서 소크라테스는 고독을 바탕으로 철학을 짠다. 고독은 철학자의 숙명이었다. 그러나 그 고독은 자기 폐쇄가 아닌, 대화를 향한 열린 고독이다.

씨줄과 날줄을 엮어 직물을 짜듯, 소크라테스는 질문과 응답으로 지혜를 직조한다. 그의 대화법은 단순한 논리 훈련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직물 그 자체였다.


<자연의 사소한 것에서 철학을 듣다>


돌담에 스치는 바람, 흐르는 물소리조차 철학의 요소로 등장한다.

이는 철학이 추상적 교리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드러낸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시장, 길거리, 심지어 술집에서도 대화를 통해 진리를 묻고 답했다.

자연과 일상은 철학의 배경이 아니라, 철학의 일부였다. 시가 보여주는 이 장면은 ‘삶이 곧 철학’이라는 태도를 상징한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쁨>


“죽음의 그림자도 두렵지 않은 충만한 기쁨”이라는 표현은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순간을 함축한다.

그는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고도 도망치지 않았다. 감옥에서 독배를 마시면서도 두려움 대신 담담한 기쁨을 택했다.

죽음은 철학적 삶의 완성, 영혼의 자유로움이었다. 시인은 이 순간을 ‘저녁 식탁’에 놓인 충만함으로 형상화한다. 죽음을 삶의 끝이 아니라 만찬의 자리로 바꾼 것이다.


<진리의 별, 등불>


마지막 구절은 시의 절정이다. 소크라테스의 눈동자 속에 있던 진리의 별은 개인의 죽음 이후에도 남아, 오늘의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된다.

이는 진리의 영속성을 상징한다.

한 사람의 생애는 끝나지만, 철학의 빛은 세대와 문명을 넘어 전해진다.

그 별은 플라톤에게,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까지 이어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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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의 오늘> 우리에게 남는 소크라테스의 저녁


이인애 시인의 작품은 단순히 한 철학자의 생애를 기리는 시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철학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저녁의 고요 속에 스스로를 성찰하는가, 고독을 바탕으로 진리를 직조하는가, 자연과 삶 속에서 사유하는가, 죽음을 넘어 기쁨을 품는가. 소크라테스의 저녁은 여전히 오늘 우리의 저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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