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트럼프대통령 무궁화대훈장과 신라금관 예술 외교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트럼프 대통령의 무궁화대훈장과 신라금관, 문화로 완성된 외교의 예술〉


박성진 문화평론



<역사의 무게를 지닌 순간 한·미 동맹의 새로운 상징>


2025년, 한국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에게 무궁화대훈장과 신라금관 복제품을 수여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정치적 의전이 아니다.

역사와 예술이 만나는 거대한 문화의 장면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의 긴장과 냉전을 대화의 무대로 옮긴 최초의 미국 대통령으로 평가받는다. 2018년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 보여준 그 손길은, 냉전의 언어를 인간의 언어로 바꾸려는 시도였다.

그의 도전은 완전한 성과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평화의 서곡을 울린 것만으로도 시대는 그를 기억할 것이다. 한국이 그에게 훈장을 수여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용기의 기억을 기리는 행위였다.

무궁화대훈장은 국가 최고 예우의 상징이며, 신라금관은 하늘과 인간을 잇는 신성한 유물이다.

두 상징이 만나는 순간, 한·미의 관계는 군사적 동맹을 넘어 문명적 동맹의 단계로 들어섰다.

한국은 그에게 정치적 명예가 아닌, 정신적 유산의 상징을 건넸다.



<신라금관의 미학, 천년의 금빛이 전하는 평화의 언어>


신라의 금관은 천년을 넘어 한국 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걸작이다.

그 금빛의 가지와 사슴뿔은 하늘과 인간, 생명과 신성을 잇는 상징이다.

그 금빛 속에는 전쟁보다 평화를, 권력보다 생명을 염원한 고대의 예술철학이 깃들어 있다.

한국이 트럼프에게 금관을 수여한 것은, 단순히 그를 예우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가 한반도의 분단을 넘으려 했던 평화의 의지를 문화의 언어로 기념하기 위함이다.

노벨평화상이 정치의 시선으로 판단된다면, 금관은 예술의 눈으로 주어진 상이다.

그는 더 이상 한 나라의 대통령이 아니라, 문명 간의 대화자로 기억될 것이다.

한국은 전쟁의 상처 위에 예술을 얹었다.

그 예술은 피의 역사에 금빛의 상징을 입히며,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미의 외교로 승화되었다.


<무궁화대훈장의 품격과 감사를 예술로 표현하다>


무궁화는 한국인의 영혼이다.

그 꽃은 수천 년 동안 피고 지면서도, 한 번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 인내와 생명력은 한국이 세계 속에서 보여준 정신의 상징이다.

한국이 트럼프에게 무궁화대훈장을 수여했다는 것은

그가 남북 간 대화를 촉진하고, 한반도 평화의 문을 연 인물로 평가받았음을 의미한다.

비록 그 문은 완전히 열리지 않았지만,

그가 돌린 손잡이는 지금도 역사의 문고리에 남아 있다.

무궁화대훈장은 단순히 ‘공로’의 보상이 아니다.

한국이 한 인물에게 전하는 존경의 시적 제의다.

그 훈장은 국가가 주지만, 그 의미는 문화가 새긴다.

그 속엔 한국이 미국에, 한 인간에게, 그리고 인류에게 전하는 감사의 예술이 있다.



<노벨평화상보다 빛나는 문화의 상>


트럼프 대통령은 노벨평화상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역사는 때로 상보다 더 고귀한 감동의 순간을 남긴다.

노벨상은 위원회가 주지만, 금관은 한국민족의 마음이 준 상이다.

한국의 금관과 무궁화는 정치적 계산의 산물이 아니다.

예술로 번역된 평화의 감정선이다.

그 상징의 깊이는 외교문서 한 줄보다 더 오래간다.

역사는 상을 잊지만, 상징은 잊지 않는다.

트럼프의 손에 쥐어진 금관은 그가 평화의 왕관을 썼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보다는 한반도의 백성들이 그에게 평화의 희망을 얹어주었다는 표시이다.

그 왕관은 권력의 상징이 아니라 겸손의 증거로 빛난다.


<한·미 관계, 총칼에서 문화로>


70년 전, 한·미는 전쟁의 참호 속에서 손을 잡았다.

2025년, 그 손은 이제 예술의 장미정원에서 다시 맞닿았다.

과거의 동맹이 ‘피의 형제애’였다면, 오늘의 동맹은 ‘문화의 형제애’다.

트럼프는 대통령 시절,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 앞에서

“우리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웠고, 그 희생을 잊지 않을 것이다”라며 헌화했다.

그의 그 손길이 이제 신라의 금관으로 환생한 것이다.

전쟁의 상징이 평화의 유물로 변했을 때,

동맹은 단순한 협력에서 공감의 예술로 승화된다.

한국의 선물은 물질이 아니라 정신이었다.

그것은 ‘당신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던진 말 한마디’를

천년의 예술로 봉헌하는 제의였다.


<감동의 정치, 예술의 외교>


트럼프는 수여식에서 “한국의 영혼이 담긴 선물에 깊이 감동받았다”라고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정치인의 계산된 미소가 아니었다. 한 인간의 진심 어린 울림이 있었다.

그 순간, 그는 제국의 대통령이 아니라 한 인류의 구성원으로 서 있었다.

신라의 금관을 손에 쥐고, 그는 천년 전의 장인 정신과 마주했다.

그 금빛에는 욕망이 아니다. 인간 존재의 찬란함이 스며 있었다.

예술은 언제나 인간을 무장해제시킨다.

그날의 수여식은 정치가 문화 앞에 무릎을 꿇은 순간이었다.

예술은 외교의 가장 고귀한 언어이다.

그 언어는 통역이 필요 없다. 감동으로 직조된다.

트럼프의 눈빛 속에는 그 감동의 언어가 번져 나갔다.


<문화가 남긴 평화의 흔적 감동의 상>


박성진 문화평론가는 이 장면을 이렇게 정의한다.

“훈장은 국가가 주지만, 감동은 문화가 남기는 것이다.”


정치의 결과는 역사가 평가하지만,

예술의 감동은 인류가 기억한다.

무궁화와 금관이 트럼프의 손에 들려진 그 순간,

한국은 평화를 정치가 아닌 예술의 차원으로 옮겨놓았다.

그 선물은 한반도의

한국과 미국이 함께

자리하여 써 내려가는 감동의 서사시다.

그는 노벨상 수상자가 되지 못했지만,

한국의 예술 앞에서 한 인간으로서 ‘평화의 왕관’을 썼다.

그날의 금빛은 외교의 기록이 아니다.

인류의 기억 속에 남을 감동의 상징이었다.

이제 역사는 그를 다시 쓸 것이다.

“한반도의 금관을 쓴 미국의 대통령,

그는 상이 아닌 감동으로 평화를 증명하였다.”

앞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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