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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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
― 광복 80주년에
多情 이인애
한일합방 블랙홀이
겨레의 혼불을 삼키던 날
강산도 얼어붙고
천지도 호흡을 멈추었다
식민통치 굴욕된 36년
민족말살 창씨개명
백성은 문패를 잃고
더부살이 하인이 되었다
일제가 회사를 세워
번영이란 미명하에
양곡을 수탈당해
풀뿌리로 채운 주린 배
동포여, 떨쳐 일어나자
민족자결 물결이 드높다
하늘에서 땅에서 바다에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오직 대한독립을 위하여
살고자 죽어간 순국선열들
3.1 만세 탑골의 태극기 물결
피 흘려 지킨 자유와 존엄
하늘이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우사
광명천지 수복이 되었다
대한독립 만세 만세 만만세
귀에 쟁쟁한 그날의 외침
평론》
광복 80주년 문학의 사명과 ‘함성’의 정신
서론》
민족사의 문학적 기념비
이인애 시인의 〈함성〉은 80년의 세월을 넘어 울려오는 역사의 메아리를 문학으로 새겨낸 작품이다.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회고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민족의 언어로 광복의 정신을 현재화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기념 시(記念詩)의 범주를 넘어선다.
그것은 ‘기억의 시’이자 ‘계승의 시’이며, 오늘의 세대에게 책임을 묻는 도덕적 선언이다.
제1연》
한일합방과 민족혼의 암흑
'한일합방 블랙홀'은 과학적 은유를 차용하여 민족사의 단절을 절망의 심연으로 형상화한다. 블랙홀은 모든 빛을 빨아들이는 우주의 공허이다. 이 표현을 통해 시인은 언어·역사·정체성이 삼켜져 버린 1910년의 절망을 드러낸다. '천지도 호흡을 멈추었다'라는 구절은 민족적 생명의 정지가 아니라, 존재론적 죽음을 선언한 날을 뜻한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혼불’의 상실, 즉 민족정신의 꺼짐으로 읽힌다. 윤동주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라 노래했던 비극적 시대의 정서와도 긴밀히 맞닿아 있다.
제2연》
정체성 말살의 폭력
'창씨개명, 문패를 잃은 백성'은 단순한 이름의 상실이 아니라, 존재의 근거를 잃은 참혹한 현실이다. 이름은 곧 역사이고, 가문의 뿌리이자 사회적 정체성이다. 문패가 사라진 집은 주인 없는 집이며, 식민지는 곧 주권 없는 나라였다.
'더부살이 하인'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신분의 추락이 아니라, 한 민족 전체가 자주성을 상실한 채 타자의 뜻에 종속된 현실을 함축한다.
이는 곧 문학의 자리도 억압받았음을 드러낸다.
그러나 억눌린 상황 속에서도 문학은 저항의 불씨를 이어가며 민족적 기억을 보존하였다.
제3연》
수탈의 경제와 굶주린 배
'양곡을 수탈당해 / 풀뿌리로 채운 주린 배'는 민중의 삶을 응축한 표현이다. 굶주림은 단순한 결핍이 아니라, 나라 없는 백성의 무력감을 드러내는 상징이다. 풀뿌리를 씹는 장면은 단재 신채호가 말한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의 비극적 현장이며, 민족문학이 탄생해야 했던 절실한 조건이다. 역사적 사실과 상징적 시어가 겹쳐지며, 고통을 기억의 시로 전환하는 문학의 힘을 보여준다.
제4연》
민족자결과 이름 없는 헌신
'동포여, 떨쳐 일어나자'라는 절규는 곧 1919년 3·1 운동의 함성을 환기한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희생한 민중의 헌신은 단순한 집단적 희생이 아니다
역사를 움직인 본질적 힘이었다.
조선의 민중에게는 그것이 곧 민족 생존의 호소였다.
이 시는 이름 없는 자들의 존재가 역사의 중심이었음을 환기시키고 있다.
이는 곧 오늘의 문학이 기념해야 할 주체 역시 영웅 개인이 아니라 무명의 민중임을 일깨운다.
제5연》
순국선열과 태극기의 피
'3.1 만세 탑골의 태극기 물결'은 문학적 이미지이자 역사적 현장의 재현이다. 태극기의 물결은 단순한 깃발이 아니라, 자유와 존엄을 피로써 지켜낸 정신의 상징이다. 순국선열은 ‘살고자 죽은 자’였다. 이 역설적 구절은 생명보다 더 큰 가치, 즉 민족의 자유와 후손의 존엄을 위해 자기 생명을 내던진 숭고한 희생을 드러낸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뿌리는 이 피의 기억 위에 서 있으며, 문학은 이를 다시 불러내어 후대에 전해야 한다.
제6연》광복과 신앙의 차원
'하늘이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우사'는 한국적 기독교 신앙과 동양적 천명사상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광복은 단순한 국제정세의 결과가 아니라, 자주적 투쟁과 하늘의 뜻이 맞물린 결실이었다. '만세 만세 만만세'라는 반복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세대를 넘어 울려 퍼지는 영원한 메아리다.
오늘 우리가 듣는 이 함성은 역사적 과거가 아니라 현재적 체험이다.
<철학적 관점 역사와 영성의 교차>
이 작품은 역사적 사실을 넘어, 민족사의 철학을 담고 있다. 김형석 철학자가 말했듯 '자유는 책임의 다른 이름'이다. 광복은 단순한 해방이 아니라 책임을 수반한다.
이어령이 강조한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말은, 광복의 성취가 단순히 정치적 독립이 아니라 영성적 자각으로 이어져야 함을 보여준다.
<함성>은
그 자각을 오늘 우리에게 요구한다.
<문학사의 맥락 윤동주와의 연결>
〈함성〉의 정서는 윤동주의 시와 맞닿아 있다.
윤동주가 하늘과 별을 노래하며 자기반성과 민족적 양심을 지켰듯, 이 작품 또한 역사적 고통을 언어로 불러내며 민족혼을 기록한다.
두 시의 차이는 시대의 현장성과 기념성에 있으나, 공통점은 ‘말할 수 없는 시대’를 ‘언어로 말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광복 80주년의 의미, 오늘의 문학적 과제>
광복 80주년을 맞은 오늘, 이 시가 던지는 질문은 명확하다. 우리는 그들의 희생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와 화해라는 보편적 가치로 확장하지 않는다면 광복의 의미는 반쪽짜리일 수밖에 없다.
문학은 이 질문을 반복하여 던지고, 기억을 언어로 새겨 넣는 사명을 가진다.
결론》함성에서 미래로
〈함성〉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기록한 시가 아니다.
그것은 광복의 기억을 현재로 소환하고, 미래 세대에 건네는 유언과도 같다. 민족의 피와 눈물로 지켜낸 자유와 존엄을 오늘의 우리가 이어받아 세계 평화와 인류 보편의 가치로 확장해야 한다는 사명이다.
종합적 총평
광복 80주년의 오늘, 이 시는 우리에게 '끝나지 않은 시작'을 말한다. 광복은 도착점이 아니라 출발점이며, 문학은 그 출발을 영원히 기록하는 책무를 지닌다.
이인애 시인의 〈함성〉은 그 책무를 다시 일깨우는 작품이며, 광복의 함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