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서병문학장 "총신 대전"-칭찬》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누구도 칭찬받아야 합니다〉


박성진 문화평론




말의 기원, 인간의 존엄을 부르는 첫 목소리


서병문 학장의 글은 인간을 언어적 존재로 규정한 하이데거의 통찰을 떠올리게 한다.

“인간은 말속에서 존재한다.”

이 단언은 인간이 단지 소리를 내는 동물이 아니라,

의미를 전하는 존재임을 말해준다.

그 의미의 중심에는 ‘칭찬’이 있다.


칭찬은 단순한 미사여구가 아니다.

그것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의 존재를 ‘예’라고 승인하는 선언이다.

타인의 수고를 알아주는 말 한마디는 존재의 인준서와 같다.

학장은 이 본질을 꿰뚫는다.


그는 인간을 움직이는 근본 원동력이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 임을 간파했다.

비난보다 칭찬이 더 오래 남는 이유는, 그것이 생명 본능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칭찬을 받는 순간, 인간은 ‘살아 있음’을 느끼고,

그 말속에서 스스로를 다시 태어나게 한다.




<3대 33의 역설, 인간 심리의 불균형에 대한 통찰>


“사람은 칭찬은 3명에게만, 비난은 33명에게 한다.”

이 구절은 인간 심리의 비대칭 구조를 압축한다.

긍정보다 부정이 빠르게 확산되는 이유는,

인간의 뇌가 생존을 위해 ‘위험 신호’를 우선적으로 기억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장의 제안은 단순한 수치의 뒤집기가 아니다.

그것은 ‘인류 언어의 방향’을 전환하자는 선언이다.

3대 33의 세상을 넘어 33대 3의 세상으로 가자는 제안은

인간관계를 넘어서 인류의 언어 문명을 치유하자는 철학적 외침이다.


비난은 바람처럼 퍼지지만, 칭찬은 흙처럼 스며든다.

학장은 바로 그 ‘흙의 언어’를 회복하자고 말한다.

그의 문장은 단순하지만, 그 안에는 언어의 생태학적 감수성이 흐른다.




<러시아 속담, 소리의 윤리와 언어의 품격>


‘칭찬할 때는 큰 소리로, 비난은 작은 소리로 하라.’

이 속담을 인용한 문장은 한 편의 시처럼 울린다.

이 문장은 단순한 처세의 지혜가 아니라, 언어의 윤리를 가르친다.

소리의 크기가 곧 마음의 크기이며, 말의 톤이 곧 인격의 높이다.


비난을 큰 소리로 내뱉는 사회는 분열로 기운다.

칭찬을 크게 외치는 사회는 화해로 향한다.

서병문 학장은 ‘소리의 높낮이’를 통해 인간의 품격을 가늠한다.

그는 “작은 소리의 비난은 사려 깊음이며, 큰 소리의 칭찬은 용기”라고 암시한다.

이 단순한 문장 하나에 윤리학과 미학, 심리학이 공존한다.


<칭찬의 사회학 관계의 산소, 소통의 숨결>


“칭찬과 격려는 산소와 같다.”

이 한 줄은 수필을 철학으로 끌어올리는 결정적 문장이다.

산소는 보이지 않지만 생명을 유지시킨다.

칭찬도 그렇다. 보이지 않지만 관계를 살린다.


칭찬이 사라진 사회는 공기가 탁한 방과 같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숨이 차고,

의심과 불만이라는 이산화탄소가 쌓여간다.

학장의 글은 이 폐쇄된 공기층을 환기시키는 창문이다.


칭찬은 공감의 바람을 일으킨다.

그 바람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막힌 통로를 열고,

무기력한 영혼에게 다시 살아갈 용기를 준다.

따뜻한 언어가 한 사회의 도덕적 산소를 만든다는 통찰은,

그의 글을 사회심리학적 명문으로 만든다.


<격려의 신학 창조주의 언어, 축복의 말>


학장의 문장은 종교적 색채를 띠지 않으면서도

깊은 신학적 향기를 풍긴다.

그의 문장은 창세기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보시니 좋았더라.”

인류 최초의 칭찬이자, 최초의 축복이었다.


하나님이 세상을 ‘좋다’고 말한 순간, 존재는 스스로를 받아들였다.

그 칭찬의 순간이 바로 창조의 완성이었다.

학장은 그 창조의 언어를 오늘의 일상으로 되살린다.

“누군가에게 칭찬하는 하루가 되길 축복합니다.”

이 마지막 문장은 성경의 축복문이자, 인간학의 결론이다.


<삼킴의 미학 비난을 이기는 침묵의 힘>


“비난은 내 선에서 꿀꺽 삼켜 버리라.”

이 한 문장은 시처럼 간결하고 선처럼 깊다.

삼킴은 단순한 참음이 아니다.

그것은 내면의 정화이며, 관계의 평화를 지키는 의식이다.


비난을 참는 것은 약함이 아니다. 강함이다.

그것은 자신을 태워 상대를 살리는 불의 인내의 결과이다.

남이 알지 못하는 선행, 말하지 않는 덕이다.

학장은 바로 그 음덕의 미학을 일깨운다.

말을 삼키는 순간, 인간은 비로소 마음의 스승이 된다.



<디지털 시대의 언어 위기와 회복>


SNS는 인간 언어의 가장 빠른 통로이자, 가장 위험한 무기이다.

좋아요 하나, 댓글 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

비난은 클릭 한 번으로 번지고, 칭찬은 스크롤 속에 묻힌다.


학장의 글은 이 시대에 대한 경고문이다.

“칭찬은 의식적으로 많이 하라.”

이 말은 단순한 예의의 권유가 아니다.

그것은 디지털 언어의 방향을 되돌리는 선언이다.

학장은 ‘무심한 말의 폭력’을 넘어

‘의식적인 말의 사랑’을 강조한다.

그의 언어는 느리지만 따뜻하고, 조용하지만 단단하다.


<칭찬의 미학 공명의 윤리와 감정의 조율>


칭찬은 단순히 기분을 좋게 하는 감정의 장식이 아니다.

그것은 ‘공명’의 기술이며, ‘감정의 조율’이다.

음악이 조율되지 않으면 불협화음을 내듯,

인간관계도 칭찬이 사라지면 삐걱댄다.


칭찬은 인간의 심장을 울리는 현이다.

그 말은 타인의 마음속에서 다시 울리고,

공감의 진동으로 세상을 따뜻하게 덮는다.

학장의 문장은 바로 그 공명의 울림을 가진다.


그의 글을 읽는 순간, 독자는 단순히 ‘좋은 말’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좋은 마음의 진동수’를 체험한다.

그 울림이 바로 칭찬의 미학이며, 인간이 서로를 비추는 방식이다.


<결론> 인간학의 귀결, 언어의 구원


글의 마지막 문장은 한 편의 기도로 끝난다.

“오늘 내가 만나는 누구에게 칭찬하는 하루가 되길 축복합니다.”

이 말은 단지 하루의 권유가 아니다.

언어로 세상을 치유하려는 영적 선언이다.

칭찬은 인간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순수한 축복이다.

그것은 위로이며, 공감이며, 희망이다.

비난의 언어가 세상을 무너뜨릴 때,

칭찬의 언어는 다시 그 세상을 세운다.

총신 대전서병문 학장의 글은 그 단순함 속에서 문명 전체가 잃어버린 인간다움을 되찾는다.

그는 말한다.

“비난보다 칭찬을, 공격보다 격려를, 분노보다 포용을.”

그 메시지는 윤리의 언어이자, 영혼의 언어이다.



종합 총평


서병문 학장의 〈누구도 칭찬받아야 합니다〉는

‘말의 구원’을 주제로 한 인류학적 명문이다.

그의 글은 신학, 철학, 언어학, 심리학을 넘나들며

한 문장으로 인간의 품격을 다시 세운다.

칭찬은 예의가 아니다. 생존의 기술이며,

비난을 멈추는 것은 침묵이 아니라 용기다.

그의 메시지는 명료하다

“칭찬은 인류의 산소이며, 격려는 영혼의 숨결이다.”

이 글은 단순한 교훈문이 아니다.

21세기 인간관계의 문명론이자,

언어, "말의 구원서"로 기록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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