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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시인-시인 피카소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시인 피카소〉

박성진 시


그는 그리지 않았다

깨뜨리고

다시 숨 쉬게 했다


얼굴은 하나로 머물지 않고

사랑도

한 번에 다 말하지 않았다


부서진 세상 위로

비둘기 하나

가만히 날아올랐다


피카소는

색으로 말을 건네던

시인이었다



이 시를 읽다 보면 피카소가 ‘무엇을 남겼는가’보다, 그가 ‘어떻게 세상 앞에 서 있었는가’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는 대상을 예쁘게 옮겨 놓는 사람은 아니었다. 이미 굳어 버린 시선들을 한 번 부수고, 그 틈으로 숨이 드나들게 하는 사람이었다.


얼굴이 하나로 머물지 않는다는 말에는, 인간을 단정 짓지 않겠다는 고집 같은 것이 느껴진다. 피카소에게 사람은 언제나 움직였고, 흔들렸고, 겹쳐 있었다. 사랑 역시 마찬가지였다. 단번에 말해 버리면 사라져 버릴 것을 알았기에, 그는 끝까지 남겨 두었다.


시 속의 비둘기는 조용하다. 높이 날지도, 크게 외치지도 않는다. 다만 부서진 세상 위로 슬쩍 날아오를 뿐이다. 그 모습은 피카소가 말하던 평화와 닮아 있다.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아직 살아 있는 숨결 하나를 보여 주는 일이다


그래서 이 시는 그를 화가가 아니라 시인이라 부른다. 피카소는 언어 대신 색을 선택한 화가였고, 문장 대신 형태를 남겼다. 피카소가 우리에게 건넨 것은 다양한 형태의 질문이었다.

우리는

너무 쉽게 하나의 얼굴만 보는 시각에 갇혀있지 않은가

하나의 말만 믿으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시는 조용히 그 물음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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