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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청나라 궁중화가 심전 화조도》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청나라 시대 궁중화가 심전의 화조도


— 자연을 정중하게 대하는 궁중의 눈


청나라(淸代)는 회화가 제도와 취향 속에서 정련된 시대였다. 황실은 그림을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질서와 덕의 표상으로 이해했고, 궁중화가는 자연을 기록하는 기술자이자 미감을 정돈하는 사상가였다. 그 중심에 심전(沈銓, Shen Quan)이 있다. 그는 화조도(花鳥圖)를 통해 살아 있는 자연을 궁정의 언어로 번역해 낸 대표적 인물이다.


심전의 화조도는 한눈에 정확함이 먼저 다가온다. 새의 깃결은 세밀한 필치로 결을 세우고, 꽃잎은 겹겹이 색을 얹어 생기를 부여한다. 그러나 이 사실성은 박제된 자연이 아니다. 화면에는 언제나 질서가 있다. 가지의 흐름은 과하지 않게 꺾이고, 새의 시선은 화면 밖을 향하거나 서로를 응시하며 균형을 만든다. 이는 궁정화가 요구한 ‘품위 있는 생동’의 전형이다.


특히 심전의 색채는 청대 궁정 취향을 충실히 반영한다. 담채 위에 농담을 절제해 쌓아 올리는 방식은 화려함을 경계하면서도 황실의 장중함을 잃지 않는다. 채색은 눈에 띄되 소리 높이지 않는다. 그 결과, 꽃은 만개하지만 요란하지 않고, 새는 움직이되 소란스럽지 않다. 자연이 스스로를 자랑하지 않는 태도—이것이 심전 화조도의 미덕이다.


구성 또한 주목할 만하다. 심전은 화면의 여백을 침묵의 공간으로 남긴다. 여백은 결핍이 아니라 호흡이다. 꽃과 새가 머무는 자리와 비워둔 자리 사이에서 관람자의 시선은 천천히 이동하며, 자연을 ‘본다’기보다 ‘곁에 둔다’. 궁중 회화가 지향한 감상은 감탄보다 숙연함에 가깝다.


청나라 화단은 서구의 원근과 명암을 제한적으로 수용했지만, 심전은 동아시아 회화의 선과 채색을 중심에 놓는다. 그는 외래의 기법을 과시하지 않고, 전통의 규범을 새롭게 다듬는다. 그 결과 그의 화조도는 시대의 표준이 된다. 황실이 원하는 자연—질서 있고, 아름답고, 오래 바라볼 수 있는 자연—이 바로 그 표준이었다.


요컨대 심전의 화조도는 단순한 자연 묘사가 아니다. 그것은 궁정의 미학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이며, 과장하지 않는 정확함과 절제된 생동의 조화다. 화폭 속 꽃과 새는 말이 없지만, 그 침묵은 길다. 청나라 궁정이 자연에게 요구한 것은 웅변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아름다움이었고, 심전은 그 요구에 가장 정중하게 응답한 화가였다.

청나라 시대의 진품을 본다는 것이 쉽지 않기에 많은 화조도가 있지만 궁중화가의 작품 청나라 건륭황제 시대의 화조도는 120호의 대작으로

값을 논할 수 없으며 한국인의 소장품이어서 더욱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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