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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한국예술가곡보존회 송년 가곡의 밤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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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K-가곡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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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술가곡보존회 〈송년 가곡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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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가장 깊어지는 저녁,

서울 한복판 한국프레스센터 20층에는 조용한 설렘이 차올랐다. 유리창 너머로 펼쳐진 덕수궁 돌담길의 야경은 말없이 빛나고 있었고, 그 위로 한국 가곡의 숨결이 하나둘 겹쳐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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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밤은 한국예술가곡보존회가 준비한 2025년 송년 가곡의 밤이었다. 한 해를 떠나보내며 요란한 축제 대신, 노래로 마음을 정리하는 자리였다. 그 중심에는 김재규 (음악박사)대표가 있었다.

그는 “가곡은 한국인의 마음이 가장 편하게 쉼을 얻는 음악”이라며, “오늘은 잘 부르기보다, 잘 돌아보기 위해 노래한다”라고 담담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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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는 스무 명의 성악가가 올랐다.

각자의 음색은 분명히 달랐지만, 노래가 향하는 곳은 같았다. "낮은음은 겨울 땅처럼 묵직했고, 높은음은 별빛처럼 맑았다."

어느 누구도 앞서려 하지 않았고, 서로의 호흡을 기다릴 줄 아는 노래들이 이어졌다. 한 곡이 끝날 때마다 박수보다 먼저 짧은 정적이 흘렀는데, 그 침묵마저 음악처럼 느껴지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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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지 않았다.

가곡은 서두르지 않았고, 관객도 시간을 재지 않았다. 가사 하나하나가 귀에 또렷이 남았고, 한국어의 울림은 악기처럼 살아 있었다. 어떤 노래에서는 오래된 그리움이 스며 나왔고, 어떤 노래에서는 아직 오지 않은 봄이 조심스레 예고되었다. 설명하지 않아도 마음에 닿는 것, 그게 바로 이 밤의 가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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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 풍경 또한 이 음악회의 일부였다.

겨울빛에 잠긴 덕수궁 돌담길은 오래된 시의 한 구절처럼 고요했고, 그 위로 흐르는 가곡은 서울이라는 도시가 여전히 품고 있는 품격을 보여주고 있었다. 빠른 말과 빠른 속도가 잠시 멈춘 자리에서, 음악은 도시의 숨을 한 박자 늦춰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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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석에는 음악인과 예술가, 그리고 가곡을 오래 사랑해 온 사람들이 함께 앉아 있었다. 누군가는 눈을 감고 노래를 들었고, 누군가는 가사를 마음속으로 따라 불렀다. 이들이 이 자리에 모인 이유는 화려함이 아니라, 한 해를 정리할 수 있는 조용한 자리가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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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의 송년 가곡의 밤은 공연 이상의 시간이었다.

한국 가곡이 여전히 살아 있고, 여전히 사람의 마음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보존은 과거를 붙잡는 일이 아니라, 오늘의 삶 속에서 다시 노래하게 하는 일이라는 믿음이 무대 위에 자연스럽게 스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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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밤은 깊었지만 차갑지 않았다.

가곡은 축복처럼 흘렀고, 관객들은 그 축복을 각자의 하루 속으로 조용히 가져갔다. 마지막 음이 사라진 뒤에도, 그 밤의 여운은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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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의 끝자락에서

이 가곡의 밤은 이렇게 속삭였다.

노래할 수 있었다면,

이 해는 충분히 잘 살아낸 시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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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을 맡은 손영미 작가의

"기차는 8시에 떠나고" 노래를 부름으로

감미로운 노래가 송년 가곡 겨울밤의

무대를 더욱 아름답게 수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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