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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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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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승대
눈이 닿자
두 개의 이로
아침이 열린다
손끝은 빛이 되고
발끝은 물이 된다
아—
아—
하루를
노래로 연다
천사의 얼굴로
잠든 시아
그 천사가
아프다
말 대신
내 가슴이
먼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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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목소리로 시작되는 시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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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아픔〉은 처음부터 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이 시는 설명하지 않고, 먼저 닿는다. “눈이 닿자 / 두 개의 이로 / 아침이 열린다”라는 첫 연은 아직 말을 갖지 못한 생명이 세계와 처음 접속하는 순간을 포착한다. 시인은 아이를 관찰하지 않는다. 그저 맞이한다. 이 낮음은 기교가 아니라 사랑의 자세이며, 시가 지닌 윤리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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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라는 말에 담긴 생의 최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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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에서 아침은 하루의 시작이 아니다. 존재가 처음으로 세계를 여는 순간이다. 두 개의 이가 난다는 소박한 사실은 생명이 스스로 세상에 닿기 시작했다는 신호가 된다. 시인은 이를 과장하지 않고 조용히 “열린다”라고 말한다. 이 절제는 삶을 오래 건너온 시인의 깊이에서 나온다. 그래서 이 아침은 가볍지 않고, 오히려 경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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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이 자연으로 바뀌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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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은 빛이 되고 / 발끝은 물이 된다”라는 구절에서 시는 미학의 중심에 선다. 아이의 움직임은 곧 자연의 언어가 된다. 빛과 물은 생명의 가장 오래된 요소이며, 아이는 이미 그 질서 안에 있다. 이 비유는 꾸밈이 아니라, 언어가 아이 앞에서 스스로 낮아진 결과다. 시인은 해석하지 않고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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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이전의 소리, 노래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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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 아—”라는 소리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시인은 이 소리를 “하루를 / 노래로 연다”라고 말한다. 언어가 음악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이 대목에서 시는 설명을 멈추고 공감으로 이동한다. 아이의 소리를 대신 말하지 않고, 그대로 남겨두는 태도에서 이 시의 인간성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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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라는 말의 절제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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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얼굴로 / 잠든 시아”라는 표현은 찬사가 아니다. 곧이어 “그 천사가 / 아프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이 시에서 천사는 완전한 존재가 아니라, 연약함의 다른 이름이다. 보호해야 할 존재가 아플 때, 그 아픔은 곧 보호자의 세계를 흔든다. 시는 이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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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보다 먼저 아파오는 가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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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연은 이 시의 윤리적 중심이다.
“말 대신 / 내 가슴이 / 먼저 아프다”
아이는 아직 말하지 못하지만, 어른은 이미 아프다. 이 아픔은 두려움이 아니라 책임이다. 시인은 슬픔을 앞세우지 않고, 대신 조용히 짊어진다. 그래서 이 시는 손녀를 향한 사랑이면서 동시에 인간 사랑의 가장 오래된 형식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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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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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아픔〉은 크지 않은 시다. 그러나 작기 때문에 깊다. 이 시에는 생을 오래 건너온 시인의 윤리와, 언어 이전의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가르치지 않고, 먼저 아파함으로써 보여주는 시다.
이 시는 손녀에 대한 애정과 사랑의 서정시로 오래 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