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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최승대 시인~ 천사의 아픔》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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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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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승대


눈이 닿자

두 개의 이로

아침이 열린다


손끝은 빛이 되고

발끝은 물이 된다


아—

아—

하루를

노래로 연다


천사의 얼굴로

잠든 시아


그 천사가

아프다


말 대신

내 가슴이

먼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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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기울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픔을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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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보다 앞선 세계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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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말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아이는 가장 먼저 ‘눈’과 ‘이’를 내민다. 아직 말하지 못하는 존재에게 세계는 문장이 아니라 접촉부터 시작되었다 눈이 닿고, 이가 드러나며, 아침은 그렇게 열린다.

이 첫 장면에서 시인은 한 걸음 물러나 있다. 설명하려 들지 않고, 대신 조용히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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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과 발끝으로 번지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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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이 빛이 되고, 발끝이 물이 된다는 표현은 아이가 세상과 맺는 최초의 관계를 보여준다. 아이는 세계를 소유하지 않는다. 스며드는 존재이다. 이 장면에는 꾸밈이 없다.

존재가 처음 얼마나 투명한 방식으로 시작되는지를, 시인은 담담하게 놓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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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라는 생의 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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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 아—”

이 소리는 의미가 없지만, 이미 아름다운 노래다. 하루는 말이 아니라 소리로 열린다. 이 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바로 이 무의미한 발성이다. 시는 여기서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언제부터 말을 앞세우며, 이런 소리들을 잊어왔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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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라는 이름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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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를 ‘천사’라 부르는 순간, 시는 신성함보다 연약함을 떠올리게 한다. 천사는 강해서가 아니라, 지켜져야 하기 때문에 천사다.

시인은 아이를 높이 들어 올리지 않는다. 대신 조심스럽게 감싸 안는다.

이 시의 시선은 숭배가 아니라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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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멈칫하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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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천사가 / 아프다”

이 두 행에서 시 전체의 숨결이 바뀐다. 앞서 흐르던 빛과 노래는 잠시 멈춘다. 아픔의 이유는 설명되지 않는다. 설명하지 않기에, 독자는 더 깊이 아픔을 느낀다. 침묵은 이 시의 가장 큰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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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먼저 아파오는 가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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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아직 말하지 못한다. 그래서 시인의 가슴이 먼저 아파온다. 이 장면은 할아버지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보여준다. 사랑은 대신 울어주는 것이 아니라, 대신 아파하는 일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보호자의 자리로 물러서지 않고, 고통의 자리로 한 발 더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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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키워내는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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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손녀를 향한 기쁨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그 기쁨이 얼마나 쉽게 아픔을 키울 수 있는지를 아는 어른의 고백이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지켜야 할 것이 늘어나고, 그만큼 가슴은 더 쉽게 아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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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아픔〉은 그래서 달콤하지 않다.

맑고, 조용하고, 깊다.

사랑스러운 손녀를 보며 가장 작은 존재 앞에서 시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표현의 순수한 서정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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