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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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詩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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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김민정
실타래 풀어가듯
엉킨 나를 풀어가며
수도 없이 일어나는
생각을 꿰고 홀쳐
정수리 한가운데로
꽃대 하나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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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킨 언어에서 한 편의 詩가 태어나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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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시작〈詩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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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완성된 시’가 아니라, 시가 태어나는 순간을 보여준다. 제목이 말하듯 이것은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의 기록이다. 김민정 시인은 이 작품에서 무엇을 말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시가 어떻게 시작되는가를 몸의 감각으로 증언한다. 그 점에서 이 시는 설명이 아니라 체험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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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출발은 단정함이 아니다. “실타래”라는 이미지가 암시하듯, 시의 시작은 언제나 엉켜 있다. 삶도 그렇고, 생각도 그렇다. 시인은 정리된 사유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리되지 않은 상태, 풀리지 않은 마음, 말이 되지 못한 생각들 속에서 시는 움튼다. 김민정 시인은 그 사실을 미화하지 않는다. 엉킨 채로 두지 않고, ‘풀어가듯’이라는 동사를 선택함으로써 시 쓰기를 노동의 차원으로 끌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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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킨 나를 풀어가며”라는 구절은 이 시의 핵심 윤리다. 여기서 ‘나’는 보호받는 존재가 아니다. 다독여지지도 않는다. 풀어야 할 대상, 마주해야 할 상태로 놓인다. 이는 자기 성찰을 넘어, 자기 분해에 가까운 태도다. 시인은 자신을 감정으로 감싸지 않고, 천천히, 그러나 끝까지 바라본다. 이 태도가 이 시를 단단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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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수도 없이 일어나는 생각”은 현대인의 내면을 정확히 닮아 있다. 생각은 질서 정연하지 않다. 떠오르고, 겹치고, 스스로를 방해한다. 시인은 이 생각들을 억누르지 않는다. 대신 “꿰고 / 홀쳐”라고 말한다. 이 두 동사는 매우 중요하다. ‘꿰다’는 연결의 행위이며, ‘홀치다’는 단번에 지나가는 결단이다. 즉, 시인은 모든 생각에 매달리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엮되, 집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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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점에서 이 시는 하나의 철학을 드러낸다. 사유란 붙잡는 일이 아니라 통과하는 일이라는 인식이다. 생각을 다 붙들면 길을 잃고, 다 흘려보내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시인의 사유는 그 중간에서 균형을 잡는다. 이것은 훈련된 사유이며, 시인만이 가질 수 있는 호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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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연은 이 시의 정점이다. “정수리 / 한가운데로 / 꽃대 하나 / 세운다.” 여기에는 과장도, 환희도 없다. 꽃이 아니라 꽃대다. 이미 피어난 아름다움이 아니라, 피어날 준비가 끝난 자세다. 정수리는 인간의 가장 높은 곳이지만, 동시에 가장 비워진 자리다. 그 한가운데 세워진 꽃대는 자만이 아니라 정렬된 집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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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에서 꽃대는 결과가 아니다. 선언도 아니다. 그것은 시를 쓰는 사람의 자세이며, 삶을 대하는 태도다. 엉킨 것을 풀고, 생각을 통과시키고, 마침내 자기중심에 하나의 방향을 세우는 일. 김민정 시인의 시작〈詩作〉은 바로 그 과정을 짧은 호흡 안에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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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깊은 이유는 말이 적어서가 아니다. 불필요한 말을 버릴 줄 알기 때문이다. 감정은 절제되어 있고, 사유는 과장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안에는 오래 버틸 수 있는 힘이 있다. 읽을수록 단단해지는 시, 다시 돌아와도 중심이 흐트러지지 않는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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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詩作〉은 말한다.
시는 갑자기 오지 않는다고
시는 엉킨 삶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천천히, 그러나 정확하게 시작된다고.
이 시가 오래 남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한 편의 시가 아니라,
시인이 시인이 되는 순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