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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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공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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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 이인애
내려오는 길을 잃은 물가
고환율 바람에 날개 단 금값
그 날개 위에 무임승차한 은값
아뿔싸 구리 너마저도 껑충
이럴 줄 알았더라면
지난 IMF 금 모으기 운동에
돌반지 금목걸이 금붙이류
싹 쓸어 내다 팔지나 말 걸
반면, 코인 값 바닥을 기어가니
여기저기 목매달이 수두룩
치자 치자 다행이라 치자
땡빚내어 가상화폐 선물 매입
깡통계좌 아니길 천만다행이라고
하마터면 대박 좇다 쪽박 될 뻔?
휴우, 난 말이지
물가가 윷놀이, 윷가락이면 좋겠어
가끔은 빽도 가 나오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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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학의 고공비행, 웃음으로 체온을 지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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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라는 단어의 등장
이 시의 첫 줄에서 물가는 이미 숫자가 아니다. “내려오는 길을 잃은 물가”는 인간의 통제에서 벗어난 생물처럼 묘사된다. 길을 잃었다는 말속에는 방향 상실과 불안이 동시에 깔려 있다. 오를 줄만 알지, 내려올 줄 모르는 존재. 시인은 이 물가를 비난하지 않는다. 다만 “잃었다”라고 말함으로써, 우리가 함께 길을 놓쳤음을 조용히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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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값의 날개, 은값의 무임승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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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값은 날개를 달고, 은값은 그 위에 무임승차를 한다. 여기서 해학은 정확하다. 경제 용어를 들이대지 않고도, 상승의 연쇄와 군중 심리를 한 장면으로 보여준다. “아뿔싸 구리 너마저도”라는 탄식은, 금속의 서열이 무너진 시대를 웃음으로 포착한다. 귀금속과 산업금속의 경계가 흐려진 순간, 시는 정확히 그 틈을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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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의 기억, 개인의 서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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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IMF는 통계가 아니라 생활의 기억으로 돌아온다. 돌반지, 금목걸이, 금붙이류. 이 나열은 단순한 물건 목록이 아니라, 한 세대의 희생과 협조의 서사다.
“싹 쓸어 내다 팔지나 말 걸”이라는 후회는 탐욕이 아니라 인간적인 아쉬움이다.
이 대목에서 시는 조롱하지 않는다.
웃음 속에 남겨진 것은, 공동체의 기억에 대한 애틋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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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의 바닥, 인간의 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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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이 하늘로 오를 때, 코인은 바닥을 기어간다. 이 대비는 냉정하지만 과장되지 않는다. “여기저기 목매달이 수두룩”이라는 표현은 웃음이 쉽게 나오지 않는 지점이다. 그러나 시는 여기서도 울지 않는다. “치자 치자 다행이라 치자”라는 말은, 비극을 비극으로만 두지 않으려는 인간의 마지막 방어다. 해학은 바로 이 지점에서 윤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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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매입과 깡통계좌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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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빚내어 가상화폐 선물 매입.”
이 한 줄은 현대 자본주의의 무모함을 압축한다. 선물이라는 단어의 아이러니가 뼈아프다. 선물은 축복이어야 하는데, 여기서는 위험이다. 그럼에도 “아니길 천만다행”이라 말하는 화자의 숨 고르기는, 아직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해학은 절망의 끝이 아니라, 버티기의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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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과 쪽박의 종이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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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과 쪽박 사이의 거리는 얇다.
시는 그 얇음을 과장하지 않고 “하마터면”이라는 말로 처리한다.
이 절제는 이인애 시의 미덕이다.
웃기기 위해 비극을 키우지 않고, 비극을 견디기 위해 웃음을 남긴다.
그래서 이 시의 웃음은 크지 않다.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웃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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윷놀이로 환원된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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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의 윷놀이는 이 시의 백미다.
복잡한 경제를 민속놀이로 환원시키는 순간, 시는 철학이 된다. 윷가락에는 의도도, 음모도 없다. 던지면 나올 뿐이다.
“가끔은 빽도 가 나오도록”이라는 바람은 공정의 요구이자, 인간적인 소망이다.
항상 모나 윷만 나오는 세상에 대한 정중한 항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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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학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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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해학은 비웃음이 아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조소도 아니다.
같은 바닥에 앉아, 상황을 조금 떨어져 바라보는 눈이다. 그래서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통한다. 물가 상승, 자산 버블, 투기의 유혹은 어느 나라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윷놀이를 떠올리는 이 마지막 장면은, 분명 한국적이다.
지역성을 품은 보편성, 이것이 이 시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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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으로 체온을 지키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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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시는 경제를 말하지만, 인간을 놓치지 않는다. 숫자 대신 숨을, 그래프 대신 기억을, 분노 대신 해학을 선택한다. 해학은 도망이 아니라 자세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웃는 것이다. 이인애 시인의 「고공행진」은 고공의 물가를 비웃지 않는다.
다만 그 아래에서, 인간의 체온을 지키는 법을 조용히 가르쳐준다.
세태시로... 해학의 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