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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문학박사 김민정-행복의 나라》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행복의 나라

— 김민정 시조


그대와

내가 있어

달도 별도 빛납니다


그대와

내가 있어

꽃도 새도 예쁩니다


그대와

내가 있어서

행복의 나라 있습니다





이 시조는 내용이 많지 않다. 많지 않지만 단단하다. 처음부터 높이 오르지 않고, 가장 낮은 자리에서 말을 건다.

“그대와 내가 있어”라는 문장은 주장도 설명도 아니다.

이미 그렇게 살아왔다는 듯한 조용한 확인이다. 이 시조는 무엇을 더 얻어야 행복해지는지를 묻지 않는다.

이미 함께 있음에 그 자체가 세계를 밝힌다고 말할 뿐이다.


과 별이 빛나는 이유를 자연의 법칙이나 우주의 질서로 설명하지 않고, ‘그대와 나’의 존재에 두는 순간, 이 시조는 서정의 차원을 넘어선다. 세계는 홀로 완성되지 않는다. 나와 네가 동시에 있을 때, 시간은 의미를 얻고 공간은 얼굴을 갖는다. 이 사유는 새롭다기보다 오래되었다. 한국 시조가 오랫동안 품어온 공동체적 세계관의 가장 맑은 형태다.


꽃과 새에 이르러 시조는 다시 한번 걸음을 멈춘다. 아름다움은 원래 거기에 있었지만, 시인은 그것을 당연하게 두지 않는다. “그대와 내가 있어 예쁩니다”라는 말속에는 인간의 태도가 세계의 빛을 바꾼다는 윤리가 숨어 있다. 자연은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응답의 존재이며, 우리는 서로를 통해서만 그 응답을 제대로 듣는다.


이 작품의 중심에는 반복이 있다. 같은 구조의 문장이 되풀이되지만, 의미를 강요하지 않는다. 반복은 강조가 아니라 호흡이다. 읽는 이는 뜻을 해석하기보다 리듬에 몸을 맡긴다. 시조가 노래였던 오래된 기억이 이 단순한 문장들 사이에서 조용히 살아난다. 언어는 말이기 전에 숨이 되고, 숨은 곧 노래가 된다.


마지막에 이르러 나타나는 “행복의 나라”는 감정의 결론이 아니다. 이 나라는 제도도 국경도 없다. 서로의 존재가 서로를 밝히는 상태, 그 관계 자체가 나라가 된다. 개인의 서정이 공동의 윤리로 자연스럽게 확장되는 순간이다. 시조 한 수가 삶의 태도가 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 시조가 세계 문학 앞에서 힘을 갖는 이유는 분명하다. 과장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으며, 설명하지 않는다. 사랑을 말하지만 감상에 기대지 않고, 행복을 말하지만 장식하지 않는다. 말이 적을수록 사유는 깊어진다는 사실을 이 작품은 정확히 알고 있다. 이 절제야말로 한국 시조가 지닌 가장 강력한 미덕이다.


김민정 시인의 시조는 미학을 늘 비워 두는 데 있다.

감정을 앞세우지 않고 최소한의 관계만 남기기 때문이다.

그 빈자리에 독자는 자신의 삶을 자연스럽게 내려놓는다. 고전을 지키되 현재를 놓치지 않는 이 균형은, 오랜 학문적 사유와 시적 감수성이 함께 길러낸 내공에서 비롯된다. 성균관의 학맥이 지켜온 절제와 품격이 이 시조의 언어 속에 과시 없이 스며 있다. 가르치지 않으면서도,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의 태도다.


이 시조는 세계로 나아가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미 서 있다. 달과 별, 꽃과 새, 그대와 나라는 가장 오래된 언어로 말하면서도, 오늘의 세계가 잃어버린 핵심을 정확히 짚어낸다. 행복의 나라는 먼 곳에 있지 않다. 지금 여기, 함께 있는 이 자리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다. 이 조용한 확신이야말로 한국 시조가 세계 문학사 앞에 내놓을 수 있는 가장 단단한 달, 별, 꽃, 새들이

지저귀어 행복한 나라!

시조가 있어서 행복한 나라이기에...

시인은 고백합니다.

그대와 내가 있어 행복한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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