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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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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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誕〉
시인 최승대
어둠 속
작은 빛 하나
사랑은 말이 아니라
사람의 몸을 입고
삶으로 내려오셨다
왕이면서
왕궁이 아닌
가장 낮은 자리에
울음으로 오신 사랑
아기 예수의 탄생 앞에
기뻐하고
감사하며
우리가
혼자가 아님을 안다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신
그 낮아짐이
오늘
세상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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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이 시는 성탄을 찬미의 언어로 높이 들어 올리지 않는다.
오히려 성탄의 본질을 가장 낮은 자리로 다시 내려놓는다.
시의 첫 이미지인 “어둠 속 / 작은 빛 하나”는 화려한 기적의 조명이 아니다. 거의 사라질 듯 미약하지만 끝내 꺼지지 않는 희망의 형상이다. 이 작은 빛은 신성의 과시가 아니라 인간의 삶 속으로 스며드는 방식 그 자체를 상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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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곧바로 성탄의 핵심을 분명히 한다. 사랑은 말이 아니라 “사람의 몸을 입고 / 삶으로 내려오셨다”는 선언이다.
여기서 사랑은 추상적 관념이나 교리가 아니다. 고통과 시간과 죽음을 함께 견디는 구체적 존재로 드러난다. 성탄은 신이 인간을 설득한 사건이 아니라, 인간의 자리로 내려와 함께 살아내기로 한 결단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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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왕이면서 / 왕궁이 아닌 / 가장 낮은 자리에 / 울음으로 오신 사랑”이라는 구절은 이 시의 윤리적 중심이다. 왕권과 권능을 포기하고, 울음으로 세상에 들어오는 방식은 힘의 논리를 전복한다.
여기서 낮아짐은 미화된 겸손이 아니라, 인간을 끝까지 신뢰하겠다는 위험한 선택이다. 신은 안전한 거리를 두지 않고, 인간의 가장 취약한 조건을 스스로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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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 혼자가 아님을 안다”라는 고백은 성탄의 감상적 위로를 넘어선다. 이는 존재론적 선언에 가깝다. 인간의 역사와 고통이 방치되지 않았다는 믿음, 삶의 가장 어두운 순간에도 함께 울어본 적 있는 신이 있다는 인식이 이 시의 정조를 지탱하고 있다.
그래서 기쁨과 감사는 감정이 아니라 깨달음의 결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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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연에서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신 / 그 낮아짐이 / 오늘 / 세상을 밝힌다”는 문장은 성탄을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형 윤리로 확장하였다.
빛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낮아짐을 선택한 사랑이 오늘의 세계를 비추는 방식이다. 이 시는 성탄을 기념일이 아니라 삶의 태도로 높이어 요청한다. 높아지려는 세계 속에서 스스로 낮아질 수 있는가,
그 질문을 조용히 남긴 채 시는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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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말수가 적다.
그러나 그 절제 속에서 성탄의 핵심 메시지는 오히려 또렷해진다. 구원은 멀리 있지 않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여전히 인간을 포기하지 않는 사랑의 빛, 그 조용한 빛이 오늘도 세상을 밝히고 있음을
시인의 시가 증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