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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이인애 시인-2026년 복 많이 지으세요》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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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복 많이 지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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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 이인애


연말이 오고

새해가 오면

해는 늘 바쁘다


지는 해, 뜨는 해

서로 교대하듯 지나가는데


사람들은 어김없이 말한다

“복 많이 받으세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복만이는 누구고

복은 대체

어디서 받는 걸까


줄 서서 받는 건지

선착순인지

아니면

늦으면 품절인지


받겠다고 손부터 내밀기 전에

한 가지를

자주 잊는다


복은

받는 게 아니라

짓는 거라는 걸


목수는 하루 종일

망치질하며 집을 짓고

재단사는 눈금 맞추며 옷을 짓고

시인은 괜히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시를 짓고

약사는 약보다

사람 마음을 먼저 짓는다


그런데 우리는

가끔

아무것도 안 지어 놓고

복부터 달라고 한다


웃음 하나 안 지어 놓고

인사만 크게 짓는다


그래도 괜찮다

지금부터 지으면 되니까


말 한마디 곱게 짓고

미소 하나 슬쩍 짓고

오늘보다

조금 덜 미워하는 마음 하나 짓고


그렇게 하루를 짓다 보면

복은

받으러 가지 않아도

슬쩍

곁에 와 앉는다


그러니 여러분

이번 새해엔

부디


복, 많이 지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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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학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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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은 어디서 오느냐”는 오래된 질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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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덕담으로 시작해 사유로 끝나는 작품이다. 연말연시마다 자동처럼 오가는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시인은 의심 없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 말 한마디를 붙잡고 가볍게 흔든다. 흔들어 보니, 그 안에서 질문이 떨어진다. 복만이는 누구인가?

복은 어디서 받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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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이 이 시의 해학적 출발점이다. 시인은 복을 추상적인 행운이나 하늘에서 떨어지는 선물로 두지 않는다. 줄 서서 받는 것인지, 선착순인지, 품절이 있는지 묻는 장면에서는, 현대 사회의 경쟁 논리와 소비 습관이 겹쳐진다. 이 부분의 웃음은 소리 내어 웃기보다는, “아차” 하며 무릎을 치게 만드는 웃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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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애 시인의 시는 해학의 시로 날카롭지 않다. 비아냥도 없고, 조롱도 없다. 대신 아주 일상적인 언어로, 우리가 너무 익숙해 미처 생각하지 않았던 태도를 비춘다. 복을 “받으려는 사람”에서 “짓는 사람”으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시는 윤리적 방향을 갖는다. 하지만 그 윤리는 설교가 아니라 생활의 언어로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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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 재단사, 시인, 약사의 예시는 이 시의 등장하는 인물이다.

이들은 모두 ‘짓는 사람들’이다. 집을 짓고, 옷을 짓고, 시를 짓고, 마음을 짓는다. 여기서 ‘짓다’라는 동사는 노동이자 태도이며, 하루를 살아내는 방식이다. 복이란 그 노동의 부산물이지, 목표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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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시인은 괜히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시를 짓고”라는 구절은 이 작품의 미덕이다. 시를 고상한 결과물로 올려놓지 않고, 괜히 아파지는 마음의 움직임으로 낮춘다. 이 낮아짐이야말로 이 시가 가진 윤리적 품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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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반 이후, 시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아무것도 안 지어 놓고 복부터 달라는 태도, 웃음 하나 짓지 않고 인사만 크게 짓는 장면은 웃기면서도 정확하다. 해학은 여기서 가장 빛난다. 비난하지 않지만, 정확히 찌르는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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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는 비판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래도 괜찮다 / 지금부터 지으면 되니까”라는 문장은 이 시의 온기다. 과거를 따지지 않고, 지금을 열어 둔다. 해학이 냉소로 흐르지 않고, 희망으로 돌아오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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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연에서 복은 더 이상 대상이 아니다. 복은 “받으러 가지 않아도 / 슬쩍 / 곁에 와 앉는” 존재가 된다. 복이 주인공이 아니다. 동반자가 되는 순간이다. 이 결말은 조용하지만 단단하다. 삶의 태도를 바꾸라는 말이지만, 말투는 끝까지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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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새해 덕담의 문법을 바꾸는 작품으로 돋보인다.

“복 많이 받으세요”를 “복 많이 지으세요”로 바꾸는 일은, 언어 하나를 고치는 일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다. 그래서 이 시는 읽고 웃고 끝나는 시가 아니라, 하루를 다시 짓게 만드는 시로 해학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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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작품이 말하는 복이란 거창한 행운이 아니다. 말 한마디, 미소 하나, 덜 미워하는 마음 하나를 짓는 일이다.

소소한 노동이 쌓여 어느 날 곁에 와 앉는 것이다.

이 시의 해학은 그 소박한 진실을 웃음으로 건네는 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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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 이 시를 읽는다는 것은, 덕담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삶을 다시 짓겠다고 마음먹는 일에 가깝다. 그리고 복을 짓는 그것이야말로,

이 시가 독자에게 건네는 2026년

새해의 가장 큰 복을 짓는 세태해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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