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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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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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우 시인
새해는 먼 데서 오지 않는다
어제의 허물을 스스로 벗고
새벽의 몸을 빌려 다시 태어났을 뿐
어둠의 무게는 땅의
이치를 어기지 않는다
인연은 붙잡을수록 멀어지고
말은 길어질수록
진실에서 멀어진다
빛은 하늘에서부터
조각처럼 부서져 흩어지며
멀어질수록 세상의
중심에 닿는다
어둠과 빛 사이에서
나는 비로소 숨을 얻는다
가짐과 비움,
탄생과 소멸이
서로 다른 길을 걷다가
한 자리에 이르듯
상반된 이치로 서로를
포옹하는 그 지점
고요한 합일 위에서 새해가
천천히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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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는 날짜가 아니라
'탄생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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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닮은 ‘새해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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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첫 연은 명백히 기독교적 탄생 서사, 더 정확히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 사건을 시적 구조로 환유한다.
“새해는 먼 데서 오지 않는다”라는 선언은, 구원의 시간이 외부에서 도래하는 사건이 아니라 내부에서 준비된 탄생임을 말한다. 이는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태어난 예수의 탄생과 정확히 포개진다. 그 탄생 역시 화려한 외부 조건이나 역사적 중심이 아니라, 가장 낮고 가장 조용한 자리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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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허물을 스스로 벗고”라는 구절은 단순한 자기반성의 차원이 아니다. 이는 회개의 언어이다. 신학적으로 회개란 과거를 부정하는 행위가 아니라, 이전의 나를 벗고 다른 존재 양식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박진우 시인의 이 문장은 새해를 ‘달력의 교체’가 아니라 존재의 탈피로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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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몸을 빌려 다시 태어났을 뿐”에서 ‘새벽’은 시간대가 아니라 탄생의 조건이다. 새벽은 밤도 아니고 낮도 아닌, 경계의 시간이다. 예수의 탄생이 그러했듯이
이 새해 역시 완성된 빛이 아니라 빛으로 향하는 몸을 빌려 태어난다.
여기서 새해는 기적이 아니라 성화(Incarnation)이다.
말씀이 몸이 되듯이 시간 또한 몸을 입어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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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관계가 실패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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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연은 첫 연의 탄생 이후, 곧바로 인간 조건의 무게로 내려온다.
“어둠의 무게는 땅의 이치를 어기지 않는다”라는 문장은 매우 중요하다.
이 시는 어둠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둠을 자연의 질서로 받아들인다.
이는 윤리적 이분법을 넘어서는 성숙한 세계 인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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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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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은 붙잡을수록 멀어지고 / 말은 길어질수록 진실에서 멀어진다” 는 인간이 관계와 언어를 다루는 방식의 실패를 정확히 짚는다.
여기서 ‘붙잡는다’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소유의 욕망이며, ‘길어진 말’은 소통이 아니라 자기 정당화다. 이 연은 새해를 맞는 인간에게 묻는다. 당신은 더 많이 말하려 하는가, 아니면 더 정확히 침묵하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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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침묵, 특히 재판정에서의 침묵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진실은 언제나 말의 양이 아니라 존재의 밀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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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은 중심으로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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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연에서 시는 빛에 대한 통념을 뒤집는다.
빛은 한 점으로 모이지 않는다. “조각처럼 부서져 흩어지며” 존재한다.
이 파편성은 현대 세계의 조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신성의 방식이기도 하다.
성서의 빛은 늘 분산된다.
별 하나, 불꽃 하나, 말씀이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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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어질수록 세상의 중심에 닿는다”는 역설은, 중심이 권력이나 시끄러운 무대가 아니라 멀어짐의 끝, 곧 비워진 자리임을 말한다.
이 연에서 새해는 확장이나 성취가 아니라 거리두기 속에서 도달하는 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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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연에 숨을 얻는 자리와 그 중간의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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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과 빛 사이에서 / 나는 비로소 숨을 얻는다.”
이 문장은 이 시의 철학적 핵심이다. 시인은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 않는다. 그는 사이에 선다. 숨은 극단에서가 아니라 중간에서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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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짐과 비움, 탄생과 소멸은 대립하지 않는다. 이 시에서 그것들은 서로 다른 길을 걷다가 결국 같은 자리에 도달한다.
이는 기독교적 케노시스(자기 비움)와 은밀히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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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내려앉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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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연에서 새해는 오지 않는다. 내려앉는다.
이 동사는 매우 중요하다. 내려앉는다는 것은 소란 없이, 무게를 두고, 자리를 인정받으며 도착하는 방식이다.
새해는 축포가 아니다. 합일의 고요 위에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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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된 이치로 서로를 포옹하는 그 지점”에서
이 문장은 이 시 전체의 결론이 된다.
새해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서로 반대였던 것들이 마침내 껴안는 순간이 되었다.
그때 비로소 시간은 다시 시작할 자격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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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우 시인의 〈새해〉는 새해를 말하지만, 실은 탄생의 윤리를 말하는 시다.
이 시에서 새해는 희망이 아니라 정직, 다짐이 아니라 성화, 축제가 아니라 침묵의 합일인 것이다.
그래서 이 시는 침묵의 시로 조용하다. 그러나 매우 깊다.
그리고 그 깊이 때문에, 오래 남는 시가 될 것이다. 새해를 시작하며 끝나는 지점까지
풍요로운 순간들을 어둠의 순간마다 빛으로 포옹하는 시인을 새해의 시는 기억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