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정연수 시인-내 안에 행복이 있습니다》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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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수 시인 〈둠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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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행복이 있습니다


새벽에 수변공원

웅성웅성 시끄럽다

일찍이 온다고 왔는데

사람이 많다


저마다 어떤 일이

어떤 소원 바람이 있기에

눈만 빼꼼히 내놓은 채

뚫어져라 한 곳만 바라본다


어떤 것을 바라고

무슨 소망들이 있기에

새벽 차가운 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나왔을까


다 같은 마음이었을까요

나는 소망을 말했다

노망 안 들게 해달라고


내 안에 행복이 있으니

한 가지밖에

바랄 것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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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둠벙’이라는 삶의 자리에서 올린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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둠벙, 낮은 자리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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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둠벙’은 깊지 않은 웅덩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 둠벙은 얕음의 비유가 아니라 삶이 머무는 자리다. 화자는 높은 곳을 오르지 않는다. 수변공원이라는 일상의 가장 평범한 공간에서, 새벽이라는 가장 소박한 시간에 서 있다. 이 시는 시작부터 말한다. 행복은 깊은 사유가 아니라 머무를 줄 아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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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성거림 속에 발견된 공통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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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공원에 모인 사람들은 서로 알지 못하지만,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

시인은 이 장면을 군중의 소음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웅성웅성”이라는 말에는 삶의 무게가 섞여 있다. 각자의 사연, 각자의 기도가 겹쳐진 인간의 소리다. 이 시의 시선은 관찰이 아니라 공감에 가까운 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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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만 빼꼼히’라는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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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만 내놓고 바라본다는 표현은 이 시의 미학적 정점이다. 이는 욕망의 절제이자, 희망의 조심스러움이다. 사람들은 온몸을 드러내지 않는다. 바람이 차고, 마음도 조심스럽다. 시인은 인간의 소망이 얼마나 소박하고 겁 많은 것인지를 이 한 문장으로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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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새벽에 나왔을까라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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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는 질문한다. “무슨 소망들이 있기에.” 그러나 이 질문은 남을 향한 것이 아니다.

결국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물음이다. 이 시에서 질문은 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질문 자체가 이미 사유이며, 질문하는 태도 자체가 삶의 성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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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망 안 들게 해 달라’ 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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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가장 중요한 지점은 이 소망이다.

크지도 않다. 성공도, 부도, 명예도 아니다.

노망 들지 않게 해 달라는 말에는 정신의 존엄, 삶의 품위, 끝까지 나로 살고 싶다는 품격의 소망이 담겨 있다.

이는 늙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삶을 끝까지 책임지고 싶다는 인간의 기본

윤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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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이미 있다는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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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말한다. “내 안에 행복이 있으니.” 이 문장은 주장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체념에 가깝다. 더 바랄 수 없어서가 아니라, 이미 충분하다는 깨달음이다. 행복을 외부에서 찾지 않는 태도, 이것이 이 시의 가장 단단한 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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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만 바라는 삶의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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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을 줄이는 일은 쉽지 않다. 이 시는 욕망을 미화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다.

다만 줄인다.

한 가지로. 그 한 가지는 삶을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이는 포기가 아니라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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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가 건네는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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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독자를 설득하지 않는다. 가르치지도 않는다.

그저 말해준다.

나도 이 정도만 바란다고. 그 말 한마디가 독자의 마음을 내려앉게 한다.

이 시의 위로는 말이 아니라 태도에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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둠벙 같은 시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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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둠벙〉은 파도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나 오래 고인다.

이 시는 독자의 마음속에도 작은 둠벙 하나를 만든다.

그 둠벙에 하루의 피로와 걱정을 잠시 내려놓게 한다.

문학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있다면, 바로 이런 자리 하나를 마련해 주는 일일 것이다.

이 시는 말한다.

행복은 거창한 성취가 아니라,

오늘도 정신이 맑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미 시작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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