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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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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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개의 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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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일출을 보려 많은 사람들이
새벽을 등에 짊어지고 산을 오른다
아직 해가 뜨기엔 캄캄한 시간
잠시 쉬며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세상이 작은 불빛의 아우성으로 온통 환하다
아파트 단지에 하나씩 켜지는 창문의 형광등
도로를 수놓은 가로등 행렬
주유소의 네온사인
지상을 달리는 자동차 후미등
저 먼 산등성이 아래서 빛나는 무엇들
사람들은 하나의 해를 보기 위해 산을 오르지만
지상 곳곳에는 이미 수천 개의 작은 해가
긴 밤을 지새우며 고운 눈망울을 반짝인다
가녀린 불빛들은 환한 몸짓으로
누군가의 방을 묵묵히 지켜주고
잠든 성당의 이마를 쓰다듬고
추운 경비초소를 덥히고
후미진 공원의 쓸쓸한 옆구리를 보듬어 주었다
희뿌연 하늘을 열고 해가 고개를 든 후에야
작은 빛들은 비로소 숭고한 일과를 마치고는
여명 속에서 하나둘 잠이 든다
그들이 다시 기지개를 켤 때 즈음
해는 시나브로 산등성이를 넘어가며
자신의 자리를 내어 준다
수천 개의 일출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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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개의 일출, 인간의 시간과 윤리적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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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 이전의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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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해가 떠오르는 순간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오히려 해가 아직 오지 않은 시간, 사람들이 기대를 등에 지고 산을 오르는 ‘이전의 어둠’에서 출발한다.
이는 일출을 사건으로 소비하지 않고, 일출을 기다리는 인간의 태도를 먼저 묻는 선택이다.
시적 시선은 정상보다 잠시 멈춘 자리에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이 멈춤이야말로 이 시의 윤리적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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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위계에 대한 조용한 전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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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태양을 가장 위대한 빛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 시는 지상의 형광등, 가로등, 네온사인, 후미등을 하나의 풍경으로 나열하며 묻는다. 정말 빛에는 서열이 있는가. 거대한 자연의 빛만이 숭고한가. 시는 도시의 불빛들을 “아우성”이라 부르면서도, 그것을 소음이 아닌 살아 있음의 합창으로 전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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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해’라는 명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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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개의 작은 해”라는 표현은 이 시의 핵심 은유다. 태양을 흉내 낸 것이 아니라, 태양과 나란히 세운 개념이다. 이 명명은 인간의 노동, 돌봄, 야간의 생을 빛으로 격상시킨다.
밤을 지키는 불빛들은 대체물이 아니라 또 다른 중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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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역할은 비추는 것이 아닌, 돌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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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에서 불빛들은 단순히 밝히지 않는다. 지켜주고, 쓰다듬고, 덥히고, 보듬어 준다.
빛은 기능이 아니라 관계가 된다. 특히 “성당의 이마”, “공원의 옆구리” 같은 신체화된 표현은 공간을 생명으로 전환시키며, 인간이 부재한 자리에도 온기가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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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숭고함에 대한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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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빛들은 “숭고한 일과”를 마친다. 여기서 숭고는 위대한 희생이 아니라 묵묵함에 있다. 주목받지 않는 시간, 박수 없는 밤, 기록되지 않는 수고가 이 시에서 비로소 존엄의 이름을 얻는다.
이는 현대 사회가 잊어온 가치에 대한 시적 복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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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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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이 시에서 군림하지 않는다. 오히려 작은 빛들이 잠들 때 조심스럽게 고개를 든다. 그리고 다시 그들이 깨어날 즈음, 자리를 내어 준다. 태양은 중심이 아니다.
순환의 일부가 된다. 자연조차 인간의 삶을 존중하는 존재로 재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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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교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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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시간관은 직선이 아니다. 낮과 밤은 대립하지 않고 교대한다. 누군가의 퇴근이 다른 누군가의 출근이 되듯, 빛 역시 교대로 세계를 맡는다. 이는 시간에 대한 경쟁이 아니라 연대의 구조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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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라는 집단적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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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하나의 해를 보기 위해 산을 오를 때, 이미 도시는 수천 개의 해로 살아가고 있었다는 깨달음은 새해 의식 자체를 되돌아보게 한다. 이 시는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보기 위해 오르는가. 혹시 이미 곁에 있는 빛을 지나치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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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문장이 열어두는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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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개의 일출이 시작된다”라는 마지막 행은 끝이 아니다.
선언이자 초대이다.
이 시는 독자에게 새로운 시각을 요구한다. 해는 하나가 아니라는 것, 빛은 멀리 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삶의 존엄은 언제나 밤에서 먼저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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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일출을 노래한 시가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시간에 대한 찬가이다.
그리고 조용히 말한다.
우리가 보지 못했을 뿐,
세상은 이미 충분히 밝다.
새해가 시작되었다. 태양빛도 작은 전등빛 아래에서도 사람의 숨결이 존재하는 한
따뜻한 일출은 쉼 없이 계속될 것이다
수천 개의 일출이 삶의 현장에서 비추인다.
좋은 시는 삶의 도전과 활력을 가져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