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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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통에 빠진 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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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애
동네에 그런 할머니 하나 있다
말은 부드럽고
손은 빠르다
사람 대신
주머니를 먼저 본다
벤치에 할아버지들이 앉아 있다
햇볕을 쬐며
말 걸어줄 사람을 기다린다
돈냄새 맡은 여우가 다가온다
“어르신”
그 한마디에
지갑이 열린다
할아버지들은 안다
한두 명이 아니라
거의 다 안다
알지만
모른 척한다
외로움이
돈보다 더 아프니까
“마지막이야”
그 말은
늘 지나간다
통장이 조용해질 즈음
여우는 바빠진다
그날
골목에서
여우는 돈을 세며 걷다가
똥통에 빠진다
늘 빳빳하게 고개만 들고
살아온 탓이다
다시 할아버지들이
벤치에 앉아
햇볕을 쬔다
지갑 대신
마음을
무릎 위에 올려두고
또 다른 여우가 걸어온다
럴쑤 럴쑤
이럴쑤가
저 여우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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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이 만들어낸 거래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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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사건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하나의 풍경을 놓아둔다. 동네, 벤치, 햇볕, 할머니, 할아버지. 이 모든 것은 특별하지 않다. 그래서 더 현실적이다. 이 시가 다루는 것은 범죄가 아니라 일상이고, 비극이 아니라 반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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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는 이 시에서 상징이지만, 동시에 매우 구체적인 인물이다. “말은 부드럽고 / 손은 빠르다”라는 두 줄은 인물의 성격을 설명하면서도 평가하지 않는다. 시는 여우를 비난하지 않는다. 여우는 이미 이 동네의 질서 속에서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존재다. 문제는 여우가 아니라, 여우가 필요해지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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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조의 중심에는 벤치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들이 있다. 그들은 기다린다.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말을 걸어줄 사람을 기다린다. 이 장면에서 시는 경제를 감정의 영역으로 끌어온다. 지갑이 열리는 순간은 사기의 순간이 아니라 관계가 시작되는 순간처럼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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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들은 안다”라는 문장은 이 시의 윤리적 핵심이다. 이들은 속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존재들이 아니다. 알고 있다. 거의 다 안다. 그럼에도 모른 척한다. 여기서 ‘모른 척함’은 어리석음이 아니라 선택이다. 외로움이 돈보다 아프기 때문이다. 이 문장은 독자를 쉽게 정의의 편에 서지 못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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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이야”라는 말은 반복된다. 이 말은 여우의 말이기도 하지만, 더 정확히는 할아버지들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믿어야 다음을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시는 이 말을 비웃지 않는다. 다만 그 말이 늘 지나간다고 조용히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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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가 똥통에 빠지는 장면은 통쾌한 응징이 아니다. 도덕적 결말도 아니다. 그저 고개만 들고 살다 아래를 보지 못한 결과다. 시는 여기서도 판단을 멈춘다. 여우는 벌을 받지 않는다. 다만 추락한다. 그리고 그 추락은 세상을 바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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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가 사라진 뒤에도 할아버지들은 다시 벤치에 앉아 햇볕을 쬔다. 지갑 대신 마음을 무릎 위에 올려두지만, 그 장면은 잠시다. 곧 “또 다른 여우”가 걸어온다. 이 문장은 이 시가 개인의 문제를 넘어 구조의 문제를 다루고 있음을 분명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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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의 “럴쑤 럴쑤”는 해학처럼 보이지만, 실은 가장 잔인한 장면이다. 이는 구경꾼의 목소리이며, 세상의 가벼운 반응이다. 여우는 여전히 ‘이쁘다’. 연민은 소비되고, 비극은 구경거리가 된다. 시는 여기서 웃음을 허락하지만, 그 웃음이 오래가지 않도록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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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정의를 말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풍경을 다시 보게 만든다. 그래서 이 시는 끝난 뒤에도 마음속 벤치 하나를 남긴다.
그 벤치에 누가 앉아 있는지, 독자 스스로 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