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문학박사 김민정 시인 시조-<바다>》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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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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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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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흰 거품

물고 오는

한 마리 물새였네


오장육부

드러내며

온몸으로 와서 우는


내 죽어

촉루로 빛날

그대 하얀 가슴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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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건너 인간의 내부로 들어오는 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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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풍경이 아닌,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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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에서 바다는 배경이 아니다. 바라보는 대상도 아니다. 바다는 사건이다.

“흰 거품 몰고 오는 한 마리 물새”라는 첫 연에서 이미 바다는 움직이며, 몰려오고, 침범한다.

이 바다는 고요한 자연이 아니라, 의식 속으로 돌진해 들어오는 감정의 파도다.

김민정 시조에서 바다는 늘 인간을 시험하는 장소가 아니라, 인간을 드러내는 계기로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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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새는 외부가 아닌, 내면의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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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새는 바다 위를 날아온 존재이지만, 이 시에서 그것은 자연의 새가 아니다.

그것은 시인의 내부에서 날아 나온 형상이다.

“한 마리”라는 단수의 강조는 외로움의 밀도를 높이고, ‘물새였네’라는 종결형 어미는 회상의 어조를 띠며 이미 상실을 예감하게 한다.

이 새는 울기 위해 오는 존재이며, 울기 위해 몸 전체를 던지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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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장육부’라는 말의 거친 정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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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시조의 결정적인 미학은 여기서 드러난다.

“오장육부 드러내며”라는 표현은 지나치게 육체적이어서 오히려 정신적이다.

이 울음은 감정의 표출이 아니다.

존재의 해체이다. 울음이 목에서 나오지 않고, 심장에서 나오지 않고, 내장의 깊이에서 터져 나온다.

이는 감정의 과잉이 아니다.

더 이상 숨길 것이 없는 상태, 즉 존재가 스스로를 포기한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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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서 우는’ 울음의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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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울음은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가 아니다.

“와서 우는” 울음이다.

이 시는 울음을 거리 두지 않는다.

울음은 다가오고, 침범하고, 결국 시인의 자리까지 도달한다. 김민정의 시적 윤리는 여기에 있다.

고통을 관찰하지 않고, 고통을 해석하지 않고, 고통이 스스로 걸어와 울도록 허락하는 태도이다.

이것이 이 시가 가진 낮고 깊은 윤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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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끝이 아닌, 발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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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어 촉루로 빛날”이라는 구절은 이 시의 중심축이다.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발광(發光)이다.

촉루는 눈물의 다른 이름이며, 동시에 빛을 반사하는 액체다.

시인은 자신의 죽음을 어둠으로 상상하지 않는다.

오히려 타인의 가슴을 밝히는 빛으로 전환한다.

이때 죽음은 개인적 사건이 아니라, 타인을 비추는 윤리적 행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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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하얀 가슴’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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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가슴은 순결의 상징이 아니다.

이 시에서 흰색은 상처 이후의 색이다.

피가 빠져나간 자리, 모든 감정이 지나간 뒤 남는 색. 시인은 자신의 촉루가 그대의 가슴속에서 빛나길 바란다.

이는 사랑의 고백이기보다 존재의 이양이다.

나의 고통이 너의 생이 되기를 바라는, 가장 조용하고 절박한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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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가 만들어낸 절제의 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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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말하고 싶은 것을 다 말하지 않는다.

시조라는 형식은 김민정 시인에게 족쇄가 아니라 윤리적 장치이다.

감정을 흘려보내지 않고, 감정을 걸러내는 그물이다.

그래서 이 시는 울부짖지 않는다.

대신 눌러 담는다.

눌러 담긴 감정은 오히려 더 오래 남는다.

이 절제는 기교가 아니라 삶의 태도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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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인간의 내부를 침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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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다 읽고 나면, 바다는 더 이상 자연이 아니다.

바다는 인간 내부의 가장 깊은 곳, 말로 표현되지 않는 층위다.

김민정 시조의 바다는 파도가 아니라 장기(臟器)이다. 물결이 아니라 맥박이다.

그래서 이 바다는 언제나 아프고, 언제나 운다. 그러나 동시에 언제나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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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시조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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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큰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읽고 난 뒤, 마음속 어딘가가 오래 젖어 있다.

이것이 김민정 시조의 힘이다. 자연을 통해 인간을 말하고, 울음을 통해 윤리를 말하며, 죽음을 통해 타인의 생을 밝히는 시다.

이 시는 보여주기 위한 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쓰인 시다.

그래서 독자는 이 바다 앞에서 감상자가 아니라, 조용한 목격자로 함께 바다 앞에

흰 거품을 바라보며 삶을 설계하게 하는

내면의 힘을 갖는 시로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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