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변희자 시인-변주된 시선

박성진 문화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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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주된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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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희자


감자 꽃이 졸고 있는

조용한 오후에


연보라색 감자 꽃잎 위

일곱 점박이 무당벌레 하나

느릿하게 낮 꿈을 청하고 있다


깜장 땡땡이 콕 박힌

앙증맞은 빨간 원피스

바람에도 끄떡없는 몸짓에

자꾸 뜻을 붙여보지만


아무 의미도 묻지 말라 한다


옴찔거림 하나에도

세상은 다 흔들리고

평화가 천만 리를 건너와

숨죽이듯 앉는다


오늘에서야 알았다

고요는 어쩌면

먼 데서 밀려오는

아득한 떨림의 음파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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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먼저 시선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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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주된 시선〉이라는 제목은 이 시가 대상을 바꾸는 시가 아니라 보는 방식을 바꾸는 시임을 미리 말해준다. 변주되는 것은 감자꽃도, 무당벌레도 아니라 화자의 인식이다. 이 시는 “무엇을 보았는가”보다 “어떻게 보게 되었는가”를 기록한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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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고 있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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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꽃이 졸고 있는 / 조용한 오후”라는 시작은 세계를 깨어 있는 상태가 아니라 졸고 있는 상태로 놓는다. 이는 긴장이나 각성 대신, 윤리적 휴지 상태에 가깝다. 이 시에서 세계는 주장하지 않고, 요구하지 않고, 그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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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느린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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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벌레는 작고 느리다. 그러나 이 시에서 중심은 거대한 사유가 아니라 이 작은 생명의 낮잠에 있다. ‘일곱 점박이’라는 구체성은 관찰의 깊이를 증명하며, 동시에 이 시가 추상으로 도망가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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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를 붙이려는 인간과 거부하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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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뜻을 붙여보지만 / 아무 의미도 묻지 말라 한다”는 대목에서 이 시는 명확해진다. 화자는 해석하려 하고, 세계는 그것을 정중히 거절한다. 이 지점에서 시는 의미 과잉의 시대에 대한 침묵의 항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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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림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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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찔거림 하나에도 / 세상은 다 흔들리고”라는 구절은 미세한 움직임이 오히려 세계를 크게 진동시킨다는 역설을 보여준다.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사소한 떨림이 세계를 움직인다는 통찰은 이 시의 윤리적 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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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도착이 아닌,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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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가 천만 리를 건너와 / 숨죽이듯 앉는다”는 표현은 평화를 상태가 아니라 태도로 만든다. 평화는 요란하게 선언되지 않고, 조용히 ‘앉는다’. 이 시에서 평화는 소유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라 잠시 허락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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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의 인식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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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연에서 화자는 깨닫는다. 고요는 비어 있음이 아니라, “먼 데서 밀려오는 / 아득한 떨림의 음파”라고. 이는 고요를 정지로 이해해 온 인식의 전환이며, 이 시의 가장 깊은 사유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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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이 바뀌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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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에는 결론도 교훈도 없다. 다만 시선을 낮추고, 속도를 늦추고, 의미를 내려놓을 때 세계가 다르게 진동한다는 사실만이 남는다. ‘변주’란 결국 대상의 변화가 아니라 자기 인식의 조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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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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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주된 시선〉의 가장 큰 미덕은 설명하지 않음이다. 말이 적고, 감정이 절제되어 있으며, 독자에게 해석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시는 읽히기보다 함께 고요해지게 만드는 시다. 오래 곁에 두고 다시 돌아오게 되는 시의 품격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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