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전중호 시인-꽃길이 아니어도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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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길이 아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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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중호 시인


기도는

밤마다 창문을 두드리지만

아침의 풍경은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다


뒤돌아보면

앞으로 간 거리보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버틴 날들이 더 많았다


세상은 열매를 세어 묻지만

하나님은

바람 속에서도 손을 놓지 않은

이 느린 걸음을 헤아리신다


아무것도 피지 않는 계절에

나무가 뿌리를 더 깊이 숨기듯

나는 실패의 그늘에서

당신의 이름을 더 낮게 부른다


박수 없는 시간,

이름조차 남지 않는 하루들 사이로

당신은 내 삶을 함께 걸으시며 소리 없이

당신의 영광을 입히신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

상처를 숨기지 못한 오늘이지만

당신을 기뻐하는 이 마음 하나로

나는 이 하루를

제단 위에 조심스레 내려놓는다


꽃이 피지 않는 계절에도

발자국만 남는 흙길 위에서

넘어질 듯 흔들리며 걷는 이 길에

동행의 숨결이 곁에 있다면

마침내 주님을 신뢰한 이름으로

나를 하늘의 이름으로 새겨 주소서


2026 둘째 날

하박국 말씀을 묵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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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꽃길’이라는 단어를 꺼내는 순간부터 독자의 기대를 한 번 꺾는다. 우리는 흔히 꽃길을 잘되는 길, 형통의 은유로 받아들이지만, 시인은 그것을 삶의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이 작품의 중심에는 성공이나 변화의 약속이 아니라, 달라지지 않는 시간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으려는 태도가 놓여 있다. 그래서 이 시의 출발은 위로가 아니라 정직한 인식이다. 기도는 있었지만, 아침의 풍경은 변하지 않았다. 이 단순한 사실을 외면하지 않는 데서 시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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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연의 고백은 신앙의 승리를 말하지 않는다. 두드리는 기도와 요지부동인 현실 사이의 간극을 그대로 드러낼 뿐이다. 그러나 이 간극은 좌절로 번지지 않는다. 시인은 현실을 원망하지도, 기도를 의심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 사이에서 자신의 시간을 조용히 바라본다. 이 태도는 종교적 열정이 아니라, 생활의 성실함에 가깝다. 그래서 이 시는 신앙시이면서 동시에 삶의 기록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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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연의 “버틴 날들”은 이 작품 전체를 지탱하는 핵심 언어다. 앞으로 얼마나 갔는가 보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얼마나 오래 서 있었는가를 말하는 이 고백은, 성취 중심의 삶의 서사를 단호히 비껴간다. 시인은 실패를 미화하지도, 성공을 갈망하지도 않는다. 그는 다만 무너지지 않았던 시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이 절제된 태도가 이 시에 깊이를 부여한다. 삶은 전진만으로 증명되지 않으며, 버팀으로도 충분히 증명될 수 있다는 인식이 여기서 조용히 자리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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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연에서 시는 개인의 내면을 넘어 사회를 바라본다. 세상은 열매를 묻고, 성과를 세고, 결과로 사람을 판단한다. 그러나 시인은 그 질문에 맞서 싸우지 않는다. 대신 다른 시선을 제시한다. 바람 속에서도 손을 놓지 않은 느린 걸음, 그 지속을 헤아리는 시선이다. 여기서 하나님은 교리적 존재라기보다, 인간을 결과가 아니라 과정으로 바라보는 기준의 이름처럼 읽힌다. 이 대목은 종교를 넘어 윤리적 감각으로 확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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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연의 자연 은유는 이 시의 사유를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아무것도 피지 않는 계절에 나무가 뿌리를 숨긴다는 인식은, 실패의 시간을 무가치한 공백이 아니라 깊어짐의 시간으로 전환한다. 이 시는 괜찮아질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괜찮아지지 않는 시간에도 삶이 어떻게 안쪽으로 자라나는지를 보여 준다. 그 과정에서 시인은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오히려 더 낮춘다. “당신의 이름을 더 낮게 부른다”는 표현은 경건함보다 현실 인식에 가깝다. 자신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음을 정확히 아는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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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 없는 시간”이라는 표현은 이 시가 가장 현실적인 지점에 도달하는 순간이다. 인정받지 못하는 하루, 이름조차 남지 않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삶의 장면이다. 시인은 그 시간을 회피하지 않고 그대로 불러낸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동행’을 놓는다. 이때 중요한 것은 기적이나 변화가 아니라, 함께 걷는 감각이다. 소리 없이 입혀지는 영광은 외적인 성취가 아니라, 오늘을 견딘 존재에게 남는 품위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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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째 연에서 시는 자신을 미완의 상태로 제단 위에 올려놓는다. 완성된 신앙, 단단한 인간상을 내세우지 않는다. 상처를 숨기지 못한 오늘 그대로를 올려놓는 이 장면은, 이 시가 왜 진실한지를 분명히 보여 준다. 이 작품은 잘 사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다만 잘되지 않는 날에도 정직하게 서는 법을 보여 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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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연에서 꽃은 끝내 피지 않는다. 대신 발자국이 남는다. 전중호 시인은 꽃보다 발자국을 선택한다. 성취보다 흔적을, 결과보다 과정을 택한다. 흔들리며 걷는 길에도 동행의 숨결이 있다면, 그 길은 이미 의미를 얻는다. 하늘의 이름으로 새겨 달라는 마지막 청원은, 인생의 결과가 아니라 인생을 건너온 태도가 기억되기를 바라는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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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종교적 언어를 사용하지만, 그 중심은 교리의 설명이 아니라 삶의 결을 기록하는 데 있다. 시인은 ‘꽃길’을 약속하지 않는다. 대신 꽃이 피지 않는 계절에도 발자국을 남기는 사람의 존엄을 보여 준다. 그리고 그 존엄을 지키는 힘이 어디서 오는지, 과장하지 않고 조용히 말한다. 이 시를 읽고 남는 것은 “좋아질 거야”라는 가벼운 위로가 아니라, 좋아지지 않는 날에도 사람이 사람으로 서 있게 하는 태도다. 그래서 이 시는 읽히는 순간보다, 시간이 지난 뒤 더 또렷해진다. 발리의 여행 중에서

성경 (하박국 말씀)을 묵상 중에 써 내려간 시로 아름다운 발리섬에 화려한 꽃들의

낙원에서 시를 쓴 고유한 작가의 품성이 느껴진 작품이어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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