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문학박사 정근옥-별들의 귀로》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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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의 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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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옥 시인


고향 가는 들길에 바람이 누우면,

별빛은 냇물에 앉아 고향 말로 운다


바람에 흔들리는 등불 하나,

캄캄한 삶의 밤길을 혼자 건넌다


술잔에 잔잔히 달을 띄우면,

막걸리 빛 달이 천둥마을을 돌다 떠난다


애련의 울음 접어 하늘에 두고,

별을 바라보며 놓는 법을 배운다


밤하늘을 돌고 도는 별들의 흰빛 행로

우주 속을 뚜벅뚜벅 걸으며 길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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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의 세계를 해체, 청각의 세계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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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의 귀로〉는 자연을 ‘보여주는’ 시가 아니다. 이 시는 처음부터 감각의 위계를 전복한다. 별은 보라고 존재하는 대상이지만, 시인은 별을 울게 한다. 더 나아가 “고향 말로” 울게 한다. 이는 풍경이 의미를 생산하는 방식이 아니라, 기억이 감각을 호출하는 방식이다. 이 시에서 세계는 빛으로 인식되지 않고, 소리의 결로 되살아난다. 정근옥 시인의 시는 감각의 이동을 통해 존재 인식의 방식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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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공간이 아닌, 기억의 억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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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말’이라는 표현은 이 시의 사유를 결정짓는다.

고향은 더 이상 지리적 원점이 아니다.

그것은 발음이고, 울음의 리듬이며, 말이 낮아지는 방식이다.

이 시에서 고향은 돌아가는 곳이 아니라, 되살아나는 곳의 음성이다.

이는 근대적 향토 서정과 결별하면서도, 기억의 근원으로서 고향을 재정의하는 최상의 시적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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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눕는다는 상상과 시간의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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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흐름의 상징이다.

그런데 이 시에서 바람은 눕는다.

이는 자연의 정지라기보다, 시간의 윤리적 태도의 변화다. 급속도로 발전하는 세계 속에 효율의 세계가 잠시 숨을 고를 때, 별빛은 냇물에 앉아 숨을 고른다.

정근옥 시인의 시는 늘 이렇게, 세계를 바꾸기보다 속도를 낮추는 방식으로 진실에 접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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냇물에 앉는 별빛의 존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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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이 냇물에 ‘비친다’가 아니라 ‘앉는다’는 표현은 매우 중요하다.

비침은 일방적이지만, 앉음은 관계다.

이 장면에서 별빛은 결코 자연을 점령하지 않는다.

잠시 머물 뿐이다.

이는 정근옥 시인의 전반에 흐르는 비지배적 세계관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곧 존재를 소유하지 않고 동행하는 태도를 상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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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의 인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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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흔들리는 등불 하나”는 인간의 초상이다.

여기엔 군중도, 영웅도 없다. 오직 하나의 등불만 있다.

그것은 흔들리지만 꺼지지 않는다.

삶을 캄캄하다고 말하면서도, 시인은 절망의 과장을 경계하고 있다

정근옥 시인은 위대하지 않으나, 끝까지 건너가는 존재임을 알 수 있다.

이 절제된 인간 이해가 이 시의 품격을 만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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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건너는 밤길과 존재의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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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건넌다”는 구절은 고독을 선언하여도 비극으로 몰아가지 않는다. 고독은 이 시에서 병이 아니라 조건이다. 누구도 대신 건널 수 없는 길을 각자 건너야 한다는 사실을, 시는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이는 성숙한 존재 인식이며, 감정의 과잉을 배제한 사유 중심의 서정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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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빛, 달- 생활세계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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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은 전통적으로 고고한 상징이지만, 여기서 달은

“막걸리 빛”이다.

이는 달을 끌어내리는 것이 아니라, 삶을 끌어올리는 표현이다. 흙, 노동, 마을, 밤의 온기가 달빛에 섞인다. 이 장면은 정근옥 시인의 시가 엘리트적 상징체계와 거리를 두고 있음을 상기하며 생활세계의 철학을 선택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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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마을과 집단 기억의 잔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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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마을은 실제 지명이 아니어도 된다.

그것은 공동체의 기억이 응축된 이름이다.

달이 그 마을을 “돌다 떠난다”는 구절에는, 한때는 존재했지만 흩어진 공동체에 대한 애정과 체념도 함께 담겨 있다.

이 시의 고독은 개인적이지만, 항상 공동체의 그림자를 지닌 고독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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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련을 접는 윤리적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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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슬픔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슬픔을 전시하지도 않는다.

“애련의 울음 접어 하늘에 둔다”는 표현은 감정을 관리하는 윤리를 보여준다.

울음을 없애지 않고, 접어 둔다.

이는 감정을 사유로 전환하는 고도의

시적 태도이며, 정근옥 시인의 시가 감상주의와 분명히 선을 긋는 지점이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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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보며 ‘놓음’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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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은 붙잡을 수 없는 존재이다.

그래서 별은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놓음의 스승이다. 시인은 별을 바라보며 놓는 법을 배운다.

이는 불교적 무소유와도, 서구적 초월과도 전혀 다르다. 정근옥 시인의 놓음은 삶을 포기하지 않는 놓음이다.

살아 있기 위해 비우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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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걷는 인간과 미미함 속의 존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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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연에서 인간은 우주의 중심에 서지 않는다. 다만 “뚜벅뚜벅” 걷는다.

이 의성어는 거창한 철학 용어보다 훨씬 정확한 표현을 제시한다.

반복되는 걸음, 멈추지 않는 보폭으로 정근옥 시인의 세계관은 투명하고 명확하다.

길은 선언으로 만들어지지 않으며 걸음으로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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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의 귀로〉는 서정시이면서 동시에 윤리의 방향을 품은 시다.

이 시는 고향을 회상하지 않는다.

대신 고향의 말투로 세계를 다시 듣게 한다.

비극을 외치지 않고, 감정을 과장하지 않으며,

우주 앞에서는 작아지되 삶 앞에서는 끝내 멈추지 않는다.

정근옥 시인의 시는

앞으로 나아가라고 재촉하지 않는다.

다만 귀를 낮추고

속도를 늦춘 자리에서

다시 걷게 만든다.

고향을 원점으로 두지 않는 새계관은

되돌아감이 아니라

귀 기울 임의 방향에서 완성된다.

별들의 귀로는 서정안에서, 윤리 안에서,

우리가 다시 무엇을 들어야 하는지를 묻는다.

길은 미리 주어지지 않는다.

선언으로 생기지도 않는다.

별이 울고, 바람이 눞고,

한 사람이 뚜벅뚜벅 걸어갈 때 그 자리에 조용히 생겨난다.

길은 반듯이 생긴다.

멈추지 않은 발걸음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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