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변희자-눈 대신 위로》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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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대신 내린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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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희자 시인, 소설 평론가, 수필가


겨울비가 온다

겨울은 이미 와 있고

눈으로 오고 싶었던 겨울비는

마음 같지 않아

소리마저 삼킨 채

겨울보다 더

파르르 시리다


지금은

오래된 기억의

따뜻한 쪽만 남기려 한다

한 해가 간다며

세상이 떠들수록

내려놓으라 한다


내리고 또 내리는

흔들림 없는 비는

먼저 헤아린 것들,

잊어야 할 것들,

말하지 못한 것들을

침묵 속에 접어 두었다가

망망대해에 이르면

높은 파도 따라

통곡으로 토하라 한다


눈이 되지 못했어도

헛되이 내리는 비는 아니다


하얗게 젖은 가슴을

고이 품었다가

파랗게 멍들 무렵

수평선이 보이면

녹슬기 전

배 띄우듯 꺼내어

너울에 앉았다가

후회 없이

하얗게 부서지는

겨울비는


눈보다 오래

위로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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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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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에는 울음이 없다. 대신 젖음이 있다.

변희자 시인의 시에서 위로는 소리로 오지 않는다.

눈처럼 내려앉지도 않고, 위로라는 말로 다가오지도 않는다.

그저 겨울비처럼, 아무 말 없이 몸을 적신다.

우리는 보통 위로를 따뜻한 말에서 찾지만,

이 시는 말보다 먼저 차가운 감각을 건넨다.

“파르르 시리다”라는 한 줄에서 이미 독자는 안다.

이 위로는 포근함의 위로가 아니라, 견딤의 위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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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비는 실패한 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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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오고 싶었던 겨울비”라는 구절은

단순한 계절의 의인화가 아니다.

이 시는 되지 못한 것들의 존엄을 말한다.

눈이 되지 못한 비,

말이 되지 못한 마음,

울음이 되지 못한 슬픔을 변희자 시인은

그 모든 ‘되지 못함’을

패배나 결핍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 상태 그대로 존재를 허락한다.

그래서 이 시에서 겨울비는

눈의 대체물이 아니라,

눈과는 다른 방식의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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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기억을 정리하지 않고 남겨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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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기억의 따뜻한 쪽만 남기려 한다”

이 문장은 결코 쉽지 않은 문장이다.

기억에서 무엇을 지우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무엇을 남기겠다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이 시는 과거를 단정하지 않다.

상처를 미화하지도 않고,

잊으라고 재촉하지도 않는다.

다만 세상이 “한 해가 간다”라고 떠들 때,

시인은 조용히 말한다.

지금은 내려놓을 때라고.

이 내려놓음은 포기가 아니라,

손의 힘을 푸는 일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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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은 감정의 저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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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에서 가장 깊은 장면은

비가 “침묵 속에 접어 둔다”는 대목이다.

말하지 못한 것들,

먼저 헤아린 것들,

잊어야 할 것, 이 모든 것들은 해결되지 않는다.

다만 접힌 채 보관된다.

그리고 그 보관 장소가 바로 침묵이다.

변희자 시인의 침묵은 공백이 아니다.

그것은 언젠가 다시 열릴

감정의 서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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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은 바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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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통곡은 아무 데서나 할 수 없다고.

망망대해에 이르러서야,

높은 파도를 만나서야,

비로소 소리를 낼 수 있다고.

이 장면에서 바다는 공간이 아니라

시간의 은유이다.

충분히 흘러간 뒤,

충분히 멀어진 뒤에야

감정은 자신을 드러낸다.

그래서 이 시의 울음은

즉각적이지 않고,

뒤늦다.

그러나 늦었기에 더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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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위로를 증명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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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되이 내리는 비는 아니다”

이 문장은 위로를 설명하지 않는다.

증명도 하지 않는다.

다만 그렇게 믿는다.

변희자 시인의 시는 독자를 설득하지 않는다.

위로를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저 묵묵히 옆에 서서

같이 젖어 줄 뿐이다.

그래서 이 시의 신뢰는

논리에서 오지 않고,

시간에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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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게 젖는다는 것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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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게 젖은 가슴”이라는 표현은

슬픔의 색을 바꾼다.

보통 상처는 검게, 붉게 남지만

이 시에서는 하얗게 젖는다.

하얀 젖음은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다는 증거다.

아직 품을 수 있고,

아직 띄울 수 있고,

아직 부서질 수 있다는 뜻이다.

부서질 수 있다는 것은

아직 살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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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띄운다는 것은, 감정을 바다에 맡기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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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슬기 전 / 배 띄우듯 꺼내어”

이 장면은 이 시의 가장 인간적인 장면이다.

감정은 오래 붙들수록

녹이 슨다.

그래서 시인은 그것을

너울 위에 앉힌다.

붙들지 않고,

버리지도 않고,

그저 보내는 일.

이것이 이 시가 말하는

성숙한 애도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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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다 오래 남는 것은, 위로의 온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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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구절은 조용하지만 단단하다.

“눈보다 오래 / 위로로 남는다”

이 시가 말하는 위로는

따뜻함의 지속이 아니라,

존재의 지속이다.

눈은 곧 녹지만,

겨울비는 스며든다.

흔적을 남기지 않는 대신

몸 안에 남는다.

그래서 이 시는 끝내 말한다.

가장 오래 남는 위로는

말이 아니다

함께 젖고 함께 사는 시간이라고.

이 시를 다 읽고 나면

독자는 설명받은 느낌이 아니라,

조금 젖어 있는 느낌을 받는다.

그 젖음이 바로

변희자 시인의 윤리이자 미학이다.

위로는 언제나

조용히,

그리고 오래 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시는 그것을

끝까지 말하지 않고

끝내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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