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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둠벙 정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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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바다
얼마나 상처가 많으면
온전신이 시퍼렇게 멍이
들고 날마다 철석철석
가슴을 때리고 울부짖을까
시도 때도 없이
가슴을 가르며
심장을 헤집어놓고
큰소리 치면 지나가질 않나
이 골짜기 저 골에서 잡탕 놈이
내려와 가슴을
누렇게 물들여놓아도 묵묵히
내 가슴을 내가 맑힌다
한시도 편한 날이 없는 가슴으로
요란한 놈이 지나간다
천둥번개 번쩍이면서
쿵하고 때린다
저들이 부부 싸움하고
나에게 화풀이하고
잔잔한 내 마음에 생채기 남겨두고
큰소리치며 사라진다
어미의 마음처럼 다독이며
안아주고 한없이 넓은 마음으로
상처 많은 마음을 조용히 달래고
오늘도 무사히
내 가슴을 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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둠벙, 이름의 푸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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둠벙이 작다. 고여 있으나 움직여야 하는 샘처럼 가동하며. 정연수 시인의 제목으로 ‘푸른 바다 ’을 택한 순간, 이미 이 시는 도전의 자리에 서 있다.
그러나 시는 그 작은 이름 안에 ‘바다’를 끌어안는다. 개인의 마음이 사회 전체의 분노와 상처를 대신 떠안는 구조가 형성된다. 둠벙을 선택한 자리가 아니라 떠밀려온 자리이며, 작기 때문에 더 많이 살아야하며 운명을 개척하며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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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름, 상처의 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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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바다는 위안의 풍경이 아니다.
“푸른 바다”는 곧바로 “시퍼렇게 멍든 몸”으로 전도된다. 푸름은 치유의 색이 아니라 아픔의 흔적이다. 자연의 색채가 인간의 신체 언어로 바뀌는 순간, 바다는 더 이상 배경이 아니라 맞아온 시간의 증거가 된다.
이 푸름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견딤과 생명의 창조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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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고통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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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에서 가슴은 가장 자주 상처받는 공간이다. 감정의 중심이자 외부의 분노가 가장 먼저 도착하는 표면이다. “가슴을 가르며”, “심장을 헤집어놓고”라는 표현은 육체적으로 체감되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내 가슴을 내가 맑힌다”는 문장은 이 시의 핵심 윤리를 드러낸다. 상처의 책임을 스스로 감당하는 삶을 극복해 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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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탕물과 사회의 오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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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골짜기 저 골에서 내려온 잡탕 놈”은 특정 인물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에서 흘러나온 분노, 좌절, 갈등, 실패의 찌꺼기다. 감정은 언제나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른다. 바다는 항의하지 않는다. 대신 묵묵히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씻어낸다. 이 침묵은 미덕이 아니라 생존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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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화된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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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번개와 쿵 하는 소리는 재난처럼 보이지만, 시는 곧 그것을 일상의 장면으로 끌어내린다. “부부 싸움하고 나에게 화풀이하고”라는 구절에서 폭력은 사소해진다. 그러나 사소해졌기에
더 가슴 아프다. 이 시는 거대한 비극보다, 반복되는 일상이 남기는 생채기를 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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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자와 남겨지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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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을 가한 이들은 늘 사라진다. 큰소리를 치고 상처를 남긴 뒤, 아무 일 없다는 듯 떠난다. 남는 것은 바다의 가슴이다. 이 구조는 사회의 감정 배출 시스템을 닮아 있다. 분노는 흘려보내고, 책임은 약한 자리에게 남겨진다. 이 시는 바로 이 ‘남겨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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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의 마음,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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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부에서 바다는 어미의 얼굴을 갖는다. 어미는 계산하지 않는다. 얼마나 맞았는지, 얼마나 아픈지를 따지지 않는다. 다독이고 안아준다. 이는 자연의 의인화가 아니라 윤리의 선언이다. 강해지기보다 품는 쪽을 선택하는 태도. 숭고하지만 동시에 너무도 가혹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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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어줌의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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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무사히 내 가슴을 내어준다.”
이 문장은 안도처럼 들린다.
실은 비극의 지속이다.
무사하다는 말은 더 큰 파국이 없었다는 뜻일 뿐, 상처가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바다는 오늘도 자신을 열어주며 하루를 견뎌낸다. 이 반복은 영웅적이지 않아서 더 삶을 견뎌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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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남기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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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 〉는 위로하지 않는다.
견딤을 미화하지도 않는다.
다만 묻는다.
왜 늘 같은 자리가 상처를 떠안는가. 왜 세상은 조용한 존재를 가장 먼저 두드리는가.
이 시의 울림은 크지 않다. 대신 오래 남는다. 그것은 수많은 상처를 삼킨 바다의 숨처럼, 낮고 깊게 가슴속에서 철석거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