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이인애 시인-돈로 독트린》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

돈로 독트린


■□

多情 이인애


휘뚜루마뚜루, 마두로.

일백사십팔 분 만에 무너진

베네수엘라의 오리노코 벨트.


‘태양의 카르텔’인가,

‘석유 패권의 회복’인가.


강대국의 힘으로 선택되는

글로벌 평화와 혼돈,

불법 이주와 마약 밀매 차단이라는

명분 아래

석유 인프라 재건을 말하며

높이 쌓아 올리는

안보의 바벨탑.


“중남미 기름 우물에

비(非) 서반구 강대국은

절대 침 흘리지 마시라!”


트통령

다 좋은데요.

기왕지사 칼자루를 쥔 김에

자유시장경제의 수호천사로서

민주주의의 기치를 높이고

인류 평화를 지키는

참된 리더이기를


언제까지나

손 모아 기도합니다.


■□

평론-(해학)


■□

제목이 이미 하나의 논쟁이다


■□

〈먼로 독트린〉이라는 제목은 단순한 역사 차용이 아니다. 이는 외교 원칙이 시간이 흐르며 어떻게 욕망의 언어로 변형되는지를 드러내는 개념적 장치다. 방어를 표방하던 선언이 어느 순간부터 경계의 언어가 아니라 소유의 언어로 쓰이게 되었음을, 시는 제목 하나로 암시한다. 이 시는 질문한다. 원칙은 언제부터 힘의 정당화가 되었는가.


■□

가벼운 리듬이 만드는 윤리적 거리


■□

“휘뚜루마뚜루, 마두로.”

이 첫 구절의 가벼움은 무책임이 아니라 의도된 거리 두기다. 시인은 권력을 엄숙하게 부르지 않는다. 웃음에 가까운 리듬으로 이름을 굴리며, 권력의 무게를 일상의 자리로 끌어내린다. 세태문학에서 웃음은 장식이 아니라 태도다. 이는 권력을 신성화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

시간의 압축, 삶의 생략


■□

‘일백사십팔 분’이라는 시간은 사실 여부보다 상징이 중요하다. 이 숫자는 오늘의 국제정치가 작동하는 속도를 보여준다. 숙고는 사라지고, 설명은 생략되며, 삶의 맥락은 압축된다. 오리노코 벨트의 붕괴는 지질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폭력이다. 시는 숫자를 통해 인간이 얼마나 쉽게 삭제되는지를 드러낸다.


■□

질문 형식으로 이루어진 고발


■□

“카르텔인가, 패권인가.”

이 문장은 선택을 요구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상 선택을 무효화한다. 두 단어가 나란히 놓이는 순간, 시는 이미 말해버린다. 범죄 조직의 논리와 국가 권력의 언어가 구조적으로 얼마나 닮아 있는지를. 해학은 여기서 냉소로 바뀌고, 질문은 고발이 된다.


■□

명분의 언어가 쌓아 올린 바벨탑


■□

불법 이주, 마약 밀매, 인프라 재건.

이 단어들은 각각 옳다. 그러나 시는 묻는다. 왜 이 언어들은 늘 같은 방향으로만 사용되는가. “안보의 바벨탑”은 명분이 명분 위에 쌓이며 만들어진 언어의 구조물이다. 높아질수록 인간은 보이지 않고, 정의는 추상으로만 남는다.


■□

금지의 문장에 숨은 소유의 고백


■□

“침 흘리지 마시라”는 문장은 해학의 절정이다. 금지처럼 들리지만, 실은 소유의 선언이다. 개입을 막는 말이 아니라, 이미 선이 그어졌음을 알리는 고백이다. 해학은 이 지점에서 가장 정직해진다. 웃음은 사라지고, 욕망만 남는다.


■□

‘형’이라는 호칭이 만드는 비판의 온도


■□

‘트통형’이라는 호칭은 이 시의 윤리적 균형점이다. 적대도, 숭배도 아닌 자리. 시인은 욕하지 않고 말을 건다. 이 친근한 호명은 비판을 약화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권력자를 인간의 자리로 끌어내려, 부끄러움의 밀도를 높인다.


■□

칼자루를 쥔 자에게 묻는 질문


■□

“기왕지사 칼자루를 쥔 김에”라는 구절에는 현실 인식이 담겨 있다. 시인은 권력이 존재함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미 쥐고 있다면,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묻는다. 이는 이상주의가 아니라 책임 윤리의 언어다. 냉소보다 성숙한 태도다.


■□

기도라는 형식의 역설


■□

시의 마지막은 기도다. 그러나 이 기도는 순응이 아니다. 이는 조건부 축복이며, 현재에 대한 조용한 비판이다. “참된 리더이기를”이라는 말속에는 아직 그렇지 않다는 전제가 담겨 있다. 시인은 저주 대신 기도를 택함으로써, 더 무거운 책임을 남긴다.


■□

세태문학으로서의 자리


■□

〈돈로 독트린〉은 정치적 구호가 아니다. 시대의 언어를 그대로 가져와 비틀고, 웃기고, 낯설게 만든다. 독자를 설득하지 않고, 대신 생각하게 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작품은 오늘의 세계를 기록하는 해학적 세태문학으로 자리를 확보한다.



■■

돈로 독트린-도널드 트럼프와 미국

제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의 성을 합성한 신조어. 힘의 외교와 패권 논리를 풍자적으로 지칭하는 말

작가의 이전글박성진 《박두익 시인-새로운 기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