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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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문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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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라한 버스정류장에서, 사람 눈높이에 선 이름
< 이회영 >
1867-1932
건국훈장 독립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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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시장 앞 버스정류장에 서 있으면, 늘 같은 풍경이 반복된다. 사람들은 버스 도착 시간을 확인하고, 휴대폰을 내려다보고, 다시 고개를 든다. 그 흐름 속에 작은 철판 하나가 서 있다. 크지도 않고, 튀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그 철판은 사람 눈높이에 맞춰 세워져 있다.
고개를 들 필요도, 허리를 굽힐 필요도 없다. 서 있는 그대로 읽게 된다. 그곳에 이름이 있다. 이회영. <1867-1932 건국훈장 독립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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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내놓은 사람의 이름이 이렇게 담담하게 서 있다. 높이 올려다보게 하지도 않고, 아래에서 읽게 하지도 않는다. 오늘을 사는 사람과 같은 높이, 같은 시선에서 말을 건다. 이 배치 하나만으로도 이 인물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짐작하게 된다.
이회영은 늘 그런 자리의 사람이었다.
앞에 나서서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뒤에서 버티며 길을 닦았다.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독립군을 길러냈지만, 그것을 업적으로 내세우지 않았다. 전 재산을 내놓고, 형제의 삶까지 걸면서도, 그 선택을 훈장처럼 달지 않았다. 그에게 독립은 명분이 아니라 일상이었고, 결단은 말이 아니라 생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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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의 이름이 높은 기단 위가 아니라, 사람 눈높이에 서 있는 것이 자연스럽다. 독립은 누군가를 우러러보며 이루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같은 자리에서 견디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함께 가는 일이었다. 그는 늘 사람 곁에서 역사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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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 그 철판과 마주치면, 발걸음이 멈추어진다. 이름 하나 읽는 데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이름이 지나온 시간은 가볍지 않다. 화려한 설명도, 과장된 수식도 없다. 다만 같은 높이에서 전해지는 묵직한 생의 무게가 있다. 오늘은 사진을 한컷 찍고 서툰 글을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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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눈높이에 세워진 작은 철판.
그것만으로도 이 정류장은 더 이상 평범한 공간이 아니다. 이곳은 역사를 올려다보는 장소가 아니라, 오늘의 삶과 나란히 마주하는 자리다. 버스를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이회영이라는 이름은 조용히 말한다.
역사는 멀리 있지 않다. 조용히 나라를 위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이회영 활동무대의 터" 현재는 남대문시장 이곳, 상동교회에서 만주 망명 전 활발하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