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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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함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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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초 시인
쓸쓸함
한 잔 드실까요
초가을 맑으나 맑은
말씀으로
고여서 오는
초가을
높으나 높은
하늘 빛깔의
머언 그리움
한 숟갈
넣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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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초 시인의 이 시에서 쓸쓸함은 감정의 토로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에 가깝다. “한 잔 드실까요”라는 첫 문장은 자기 안으로 가라앉는 독백이 아니라, 타인에게 조심스레 건네는 낮은 예의로 시작된다. 쓸쓸함은 이 시에서 혼자 견뎌야 할 상태가 아니라, 함께 나눌 수 있는 감각으로 제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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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다’는 행위는 이 시의 사유를 여는 핵심이다. 쓸쓸함을 쏟아내거나 밀어내지 않고, 몸 안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감정을 배제하지도 과장하지도 않는다. 이 지점에서 이 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카타르시스의 개념과 자연스럽게 닿아 있다. 쓸쓸함은 억눌러 제거해야 할 감정이 아니라, 통과함으로써 맑아지는 감정이다. 마신다는 행위는 감정의 소모가 아니라 정신을 고르는 정돈이며, 조용한 치유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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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을이라는 계절 역시 단순한 배경에 머물지 않는다.
“맑으나 맑은 말씀”, “높으나 높은 하늘 빛깔”이라는 반복은 쓸쓸함의 성질을 뚜렷이 드러내었다.
이 쓸쓸함은 탁하지 않고 무겁지 않으며, 투명한 상태로 내면의 세계에 잠재하고 있다. ‘말씀’과 ‘하늘’이라는 어휘는 쓸쓸함을 개인의 심정에서 끌어올려 윤리와 질서의 차원으로 이동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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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머언 그리움”이라는 표현은 이 시의 중심축이다. 가까이 다가오지 않기에 넘치지 않고, 넘치지 않기에 흐려지지 않는 그리움. 이 시에서 그리움은 채워야 할 결핍이 아니라, 거리를 지킴으로써 오히려 맑아지는 감정이다. 이로써 쓸쓸함은 고독으로 미끄러지지 않고, 보편적 감정의 품위를 획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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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의 “한 숟갈 / 넣어서”는 시의 윤리를 완성한다. 쓸쓸함은 가득 들이키는 감정이 아니다.
삶에 조금 섞일 만큼만 허락되는 감정이다.
이 절제 덕분에 시는 자기 연민으로 기울지 않고, 감정의 성숙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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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초 시인의 이 작품은 쓸쓸함을 이겨내거나 극복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쓸쓸함을 마시는 법, 감정을 소비하지 않고 정화하는 법을 보여준다. 덧셈도 뺄셈도 아닌 자리에서, 고독이 아니라 보편성으로 한 걸음 정진한 시다.
〈쓸쓸함 한 잔〉은 감정이 과잉된 시대에, 현대인에게 가장 조용하고 단정한 방식으로 건네는 문화적 제안이며, 고독과 쓸쓸함 속에 갇혀 있던 언어를 다시 열어 보이게 하는, 여백 있는 시의
쓸쓸함의 문화적 성숙함을 넓게 열어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