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문학박사 김민정 시인-펄펄펄 꽃잎》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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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펄펄, 꽃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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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순한 햇살들이 초록숲을 만들 동안

바람에 지는 벚꽃, 천지가 꽃안개다

나이테 둥근 시간도 새떼로 날아간다


움직이는 모든 것엔 둥지 트는 사랑 있지

실시간 반짝이는 봄볕 속 너를 본다

봄이다, 꽃불자락이 들녘마다 타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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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펄펄, 꽃잎은 제목이 한 편의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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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펄펄, 꽃잎」이라는 제목은 설명이 아니라 상태의 선언이다. ‘펄펄펄’은 꽃잎의 움직임이자, 시인의 심장박동의 소리이다.

봄을 바라보는 관조가 아니라, 봄에 동참한 몸의 리듬이 먼저 나온 것으로 해석한다.

이 제목 하나로 시는 이미 고요함을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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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한 햇살’에서 시작하는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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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행의 “순한 햇살들”은 봄의 온도를 낮춘다. 찬란함보다 순함을 먼저 내세우는 태도는 김민정 시조의 미학적 세계의 출발점이다. 시조의 세계는 압도하지 않고, 살며시 자라난다.

초록숲이 “만들 동안”이라는 표현 속에는 시간이 노동처럼 흘러가는 조용한 생성의 철학이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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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천지가 꽃안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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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은 늘 개별로 보이지만, 이 시에서는 세상 모든 시야에서 바라보는 “천지”가 된다. 꽃잎 하나하나가 모여 세계의 호흡을 이룬다. ‘꽃안개’라는 말은 시각적 현상 같지만, 실은 존재의 농도를 가리키고 있다.

봄은 선명할수록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흐릿해질수록 가득 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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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나이테가 아니라 새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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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테 둥근 / 시간도 / 새떼로 / 날아간다”는 이 시의 핵심 전환부이다. 시간은 흔히 축적되거나 쌓여있지만, 여기서는 이동하고 있다. 나이테처럼 둥글게 쌓였던 시간이 새떼로 흩어질 때, 봄은 기억이 아니라 현재형의 사건이 된다.

이는 시인이 시간을 바라보는 철학적 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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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곳에 둥지를 트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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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절에서 시는 자연시를 넘어 존재론으로 들어간다. 움직임은 우연이 아니라 목적성을 지닌다.

모든 움직임의 끝에는 ‘둥지’, 곧 머무름의 욕망이 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생명이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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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이라는 언어의 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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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은 자칫 시조의 호흡을 깨뜨릴 수 있는 단어이다.

그러나 김민정 시인은 이를 과시하지 않는다. “실시간 / 반짝이는 / 봄볕 속”에서 이 말은 지금, 여기를 붙잡는 철학의 사유로 작동하여 전개해 나간다.

봄은 추억이 아니라, 놓치면 사라지는 현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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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본다’ 봄의 도착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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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에서 ‘너’는 특정 인물이 아니다.

세계가 나에게 건네는 얼굴이다. 자연을 본다는 말 대신 ‘너를 본다’고 말함으로써, 시인은 봄을 대상화하지 않는다. 바라봄은 곧 관계의 성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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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불자락은 소멸이 아닌 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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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의 “꽃불자락이 / 들녘마다 / 타오른다”는 봄의 종결이 아니다. 이는 소멸의 이미지가 아니라 연소의 이미지다.

꽃은 지면서 꺼지지 않고, 오히려 들녘 전체로 번진다.

봄은 끝나지 않고 번져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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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시조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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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김민정 시조시인이 오랫동안 간직해 온 자연, 시간, 현재성의 미학이 응축된 결과물이다. 전공자로서의 학문적 성찰은 이론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언어의 절제, 시선의 윤리, 현재를 붙잡는 태도로 구현되었다.

「펄펄펄, 꽃잎」은 봄을 노래할 뿐 아니라 봄처럼 살아가는 법을 보여주는 시조이다. 그래서 이 시를 읽는 독자는 봄을 감상하는 사람이 아니라, 잠시나마 봄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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