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문학박사 김민정 ~가을날)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가을날


김민정 시조


잘 마른빨래들이

우쭐우쭐 춤을 춘다


바지랑대 높이 올려

구름 한 점 걸어놓자


한 무리 고추잠자리 떼

제집인 듯 찾아든다




이 작품은 시조가 지닌 전통적 미덕인 절제, 관조, 생활미학을 안정적으로 구현한 수작이다. 시인은 가을이라는 계절을 직접 표명하기보다, 일상 속 사물과 생태의 움직임을 통해 자연스럽게 환기한다. 이 작품은 계절 서정을 관념이나 감상에 맡기지 않고, 구체적인 장면들의 결합으로 차분히 완성해 나가려는 태도를 지닌 시조라 할 수 있다.


초장은 “잘 마른빨래들이 우쭐우쭐 춤을 춘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여기에는 가을 햇살과 바람, 노동 이후에 찾아오는 여유가 함께 배어 있다. 특히 ‘우쭐우쭐’이라는 표현은 감정의 과잉 없이도 계절의 기운을 정확히 전달하며, 시조 특유의 리듬감을 살리는 데 기여한다.


중장은 이 작품의 시적 성취가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다. “바지랑대 높이 올려 구름 한 점 걸어놓자”에서 생활 도구인 바지랑대는 하늘과 연결되는 상상적 장치로 전환된다. 구름 한 점을 ‘걸어놓는다’는 발상은 과도한 비유 없이도 가을 하늘의 높이와 여백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며, 시조가 지닌 단문 압축의 미학과 여백의 감각을 충실히 실현한다.


종장은 “한 무리 고추잠자리 떼 제집인 듯 찾아든다”로 마무리되며, 자연과 인간의 삶이 분리되지 않은 세계를 제시한다. 고추와 잠자리의 병치는 색채와 생태의 조화를 이루고, ‘제집인 듯’이라는 표현은 가을을 쓸쓸함의 계절이 아니라 안착과 귀속의 시간으로 인식하게 한다.


종합해 보면, 이 작품은 기교를 앞세우기보다 관찰과 절제로 완성된 시조다. 일상의 소소한 풍경을 통해 계절의 본질을 포착해 낸다는 점에서, 현대 시조가 지향해야 할 담백한 서정과 시조의 미학을 충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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