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장지연 시인 ~흔들리는 지하철)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흔들리는 지하철


장지연 시인


충무로 3호선 환승구간

웬일로 줄이 짧다

내리는 사람들이 놓고 간 빈자리

세 개 중 하나가 내 것이라니, 하하


마음보다 뒤에 눈동자

눈동자보다 한참 뒤에

한 박자 느린 걸음이

실망하며 탄다


옆 칸을 서둘러 살피다

허무하게 휘청이며 돌아서

수직의 벽에 아쉬움을 기댄다


나는

꽉 찬 자리와 노인을 탐색한다


흔들린다, 흔들린다


외면할까?


운 좋다며

긴장 풀린 내 관절을 달랜다


눈으로 신호를 보낸다


환하게 웃으며

자리 몇 개를 지나쳐

거의 날아오신다


괜찮다

내 다리는 아직

저 눈동자만큼

휘청거리지 않잖아




해학과 위트로 흔들리는 마음


생활의 무대


지하철은 가장 일상적인 공간이면서, 동시에 가장 많은 감정이 스치는 장소다. 이 시는 특별한 사건을 끌어들이지 않는다. 환승구간, 줄이 짧다는 사소한 상황 하나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나 이 소소함 속에 이미 기대와 계산, 그리고 욕망이 자연스럽게

배어 있다. “하하”라는 웃음은 상황을 가볍게 만드는 동시에, 화자가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있음을 암시한다.


자리 앞의 솔직함


빈자리를 ‘운 좋다’고 말하는 순간, 시는 인간적인 솔직함을 확보한다. 이 작품은 양보를 미덕으로 내세우지 않고, 먼저 앉고 싶은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그래서 이 시는 도덕적인 긴장을 앞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독자는 그 솔직함 덕분에 화자에게 거리를 두지 않고 다가서게 된다. 공감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엇박자의 리듬


“마음보다 뒤에 눈동자 / 눈동자보다 한참 뒤에 / 한 박자 느린 걸음”은 이 시에서 가장 정교한 표현이다. 신체의 느려짐을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판단과 행동이 어긋나는 순간을 포착한다. 앉고 싶다는 마음은 이미 앞서가 있지만, 몸은 따라가지 못한다. 이 엇박자는 지하철의 흔들림과 닮아 있으며, 시 전체의 리듬을 형성한다.


탐색의 웃음


“나는 / 꽉 찬 자리와 노인을 탐색한다”라는 구절은 이 시의 해학이 가장 또렷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자리를 찾는 시선과 노인을 살피는 시선이 같은 문장 안에 놓이면서, 화자의 내면 계산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 솔직함은 부끄러움을 동반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웃음이 발생한다. 숨기지 않기에 마음도 가볍다.


흔들림의 중첩


“흔들린다, 흔들린다”라는 반복은 단순한 묘사가 아니다. 열차의 물리적 흔들림과 화자의 마음이 동시에 흔들리고 있음을 암시한다. 외면할까, 양보할까, 앉아도 될까. 이 반복 속에는 짧지만 분명한 망설임의 시간이 들어 있다. 시는 이 순간을 늘이지도, 줄이지도 않고 정확히 붙잡는다.


무언의 합의다


눈으로 신호를 보내는 장면은 도시적 예의의 정수를 보여준다. 말 한마디 없이도 상황을 이해하고, 역할을 나누는 순간. 이 무언의 합의는 지하철이라는 공간이 가진 암묵적 규칙을 드러내며, 시를 현실에 단단히 붙잡아 둔다. 그래서 이 장면은 과장되지 않고, 오히려 매우 사실적이다.


따뜻한 과장


노인이 “거의 날아오신다”는 표현은 웃음을 유발하지만, 결코 조롱이 아니다. 이 과장은 노인의 활력과 기쁨을 살려내는 장치다. 시는 노인을 보호의 대상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생기 있는 존재로 등장시키며, 양보의 순간을 부담스럽지 않게 만든다.


‘아직’의 결말


마지막의 “아직”은 이 시를 미담으로 끝내지 않는다. 화자는 자신이 아직 괜찮다고 말하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이 자기 위안은 솔직하고 인간적이다. 완벽한 윤리보다, 지금의 나를 인정하는 태도가 남는다. 그래서 이 시는 교훈 대신 여운을 남기며 다음 역으로 넘어간다.



〈흔들리는 지하철〉은 일상의 아주 작은 순간을 통해 인간의 마음을 정확히 포착한 작품이다. 웃음으로 시작해 망설임을 거쳐, 다시 웃음으로 돌아온다.

이 시의 가장 큰 힘은 흔들림을 숨기지 않는 데 있다. 지하철 안에서 그리고 일상 속에서 시적 기회를 잘 포착한 시인의 시적 제치가

돋보인 시다

작가의 이전글박성진 (문학박사 김민정 ~가을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