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김경순 시조 시인 ~타임캡슐)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시조


타임캡슐 〈time capsule〉

김경순 시조 시인


시간도 삭혀두면 똬리 트는 역사될까

한 시대 흔적들을 땅속깊이 묻고 싶어

화강암 용액에 담아 차곡차곡 쟁여둔다


슬픔도 즐거움도 아로새긴 그 세월을

천 년처럼 오래도록 꿈꾸는 듯 뒹굴다가

어느 날 비바람 털고 미라같이 일어날까


시간을 묻는 자서전


‘시간을 삭힌다’는 발상


이 시조의 첫 문장은 단호하다.

“시간도 삭혀두면”이라는 가정은 시간을 선형의 흐름이 아니라 발효와 숙성의 대상으로 전환한다.

여기서 시간은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보관되고 변질되며 의미를 생성한다.

시인은 질문한다.

“똬리 트는 역사될까.” 똬리는 반복과 축적의 형상이다.

개인의 하루하루가 똬리를 틀 때, 그것은 비로소 역사로 상승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이미 철학이다.


묻힌다는 행위의 인류학


“땅속깊이 묻고 싶어”라는 구절은 단순한 은닉이 아니다.

인류는 늘 중요한 것을 묻어왔다.

씨앗을, 삶을, 유물을, 기억을. 묻는다는 것은 잊기 위함이 아니다

미래의 발견을 전제한 신뢰이다.

이 시조에서 타임캡슐은 개인의 사물함이 아니다 미래의 신앙 행위에 가깝다.


화강암 용액과 문명의 물질성


“화강암 용액”이라는 표현은 인상적이다. 화강암은 가장 오래 견디는 물질 중 하나이며, 용액은 흐르고 스며드는 상태이다.

즉, 영원과 유동성이 동시에 제시된다.

시인은 인간의 기억을 어느 한쪽에 가두지 않는다. 완고한 돌 속에 흐름을 담아, 문명은 그렇게 유지된다고 말하는 듯하다.


차곡차곡, 인간의 윤리


“차곡차곡 쟁여둔다”는 생활어는 이 시조의 윤리적 핵심이다. 인간은 거창한 방식이 아니라, 차곡차곡 살아온 방식으로 자신을 증명한다. 위대한 순간보다 반복된 소소함이 더 오래 남는다.

이 시조는 인간의 삶을 영웅서사가 아니라 보관 가능한 일상으로 정의한다.


희로애락의 각인


후반부에서 시인은 “슬픔도 즐거움도 아로새긴 그 세월”이라 말한다.

희로애락은 선택의 대상이 아니다. 겪었는가, 통과했는가가 중요하다.

이 시조는 인간을 감정의 주인이 아니라 감정의 통과자로 그린다.

살아 있음이란 결국, 얽히고 스치며 지나오는 일이다.


천 년처럼 뒹구는 꿈


“천 년처럼 오래도록 / 꿈꾸는 듯 뒹굴다가”라는 구절에서 시간은 잠든다.

이는 망각이 아니라 유예된 기억이다.

타임캡슐 속의 인간사는 깨어 있지 않지만, 소멸되지도 않는다. 문명은 깨어 있는 순간보다, 이렇게 잠들어 있는 문장의 시간으로 더 오래 지속된다.


미라의 은유, 부활의 방식


“미라같이 일어날까”라는 종결은 강렬하다. 미라는 생명의 연장이 아니라, 의미의 연장이다.

이 시조에서 부활은 다시 숨 쉬는 일이 아니라, 다시 읽히는 일이다.

후대의 누군가가 이 캡슐을 열 때, 인간은 그 순간 다시 일어난다.


호모 사피엔스의 자화상


결국 이 시조는 호모 사피엔스가 한 세상을 어떻게 통과했는지에 대한 압축된 자서전이다.

어느 경로의 삶을 영위했고, 어떤 감정을 가지고 살아왔는지를 거창한 선언 없이 보여주는 것이라고

김경순 시인의 이 작품은 묻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았다고 답해야 한다



김경순 시인의 「타임캡슐」은 시조라는 전통 형식 안에서 인류학, 문명사, 존재론을 조용히 끌어안은 작품이다.

말수는 적지만 사유는 깊고, 감정은 절제되어 있으나 여운은 길다.

이 시조는 미래를 향한 메시지가 아니라, 미래가 우리를 해석하게 만드는 기록이다.

시간은 흐르지만, 이렇게 삭힌 타임캡슐 시간은 역사로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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