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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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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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옥 시인
결과가 뻔히 보이는 승부처에도
확실해 보이는 결과에도
늘 반전은 있다
괜찮으세요 안에는
참 많은 것들이 녹아 있다
그간의 과거
현재의 아픔
앞이 보이지 않을 깜깜한 미래까지
한 마디의 간단한 물음에 담기엔
무겁고 버거운 시간
불행한 날들 뒤의 행복한 날들은
그저 행복한 기억으로 남을 뿐
행복은 결코
불행의 치료제가 될 수는 없다
오래 축적된 오해는 두꺼운 장막이 되어
진심을 보지 못하게 한다
실은 온몸을 적시는 듯
그립다는 걸
괜찮으세요,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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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큰 목소리로 말을 걸지 않는다.
낮고 조심스러운 어조로,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자주 쓰는 한 문장을 꺼내 놓는다.
“괜찮으세요.”
너무 익숙해서 그 무게를 생각하지 않게 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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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첫 연에 등장하는 ‘반전’은
삶을 극적으로 뒤집는 사건이라기보다
우리가 믿고 있던 세계가
조용히 다른 얼굴을 드러내는 순간에 가깝다.
확실하다고 여겼던 결과가
어느 날 미묘하게 어긋나는 경험.
이 시는 그 어긋남 앞에서
놀라거나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삶이 본래 그렇다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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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으세요 안에는 참 많은 것들이 녹아 있다”는 구절에서
이 시의 시선은 질문 자체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
이 물음은 지금의 상태만을 묻지 않는다.
지나온 시간의 흔적과
지금의 통증,
아직 말로 꺼내지 못한 미래까지
함께 불러온다.
그래서 이 질문 앞에서는
누구나 잠시 말을 고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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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질문의 간단함과
그 안에 담긴 시간의 무게를 나란히 놓는다.
한 문장으로는 도저히 담아낼 수 없는 날들이
그 질문 하나에 모두 걸려 있다.
그래서 이 시는 위로를 서두르지 않는다.
괜찮다고 말하지도,
괜찮아질 것이라고 약속하지도 않는다.
말을 덜어내고
그 자리에 침묵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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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바라보는 태도에서도
이 시의 결은 분명하다.
불행 뒤에 찾아온 행복이
모든 것을 회복시켜 줄 것이라는 기대를
시인은 조용히 내려놓는다.
행복은 상처를 지우는 손이 아니라
그 위에 겹쳐지는 또 하나의 기억이다.
이 인식은 냉정하지 않고,
불행을 겪은 삶을 함부로 단순화하지 않겠다는
정직한 태도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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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쌓인 오해는
관계를 가르는 장막이 된다.
말하지 못한 것들,
말했지만 닿지 못한 말들이
시간 속에서 겹겹이 쌓여
진심을 가린다.
이 장막은 상대를 가릴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마음에도 닿지 못하게 만든다.
시인은 이 거리를 탓하지 않는다.
그저 그렇게 멀어질 수밖에 없는
관계의 취약함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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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 시는 그리움을 꺼낸다.
그리움은 크게 아프다고 외치지 않는다.
온몸을 적시듯
조용히 스며드는 감정으로 남는다.
지워지지 않기에 오래 머물고,
말해지지 않기에 더 깊어진다.
이 그리움은 상처라기보다
시간이 남겨 놓은 체온에 가깝다.
그리고 시는 다시 질문으로 돌아온다.
“괜찮으세요, 당신.”
이 문장은 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괜찮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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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시는
위로를 건네기보다
곁을 지킨다.
해답을 주기보다
침묵으로 함께한다.
그 침묵 속에서
이 시는 쉽게 사라지지 않고
마음 어딘가에 머물다가
필요한 순간
조용히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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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바탕에는
이순옥 시인이 살아온 삶의 현장이 있다.
그 자리에서 태양은
늘 같은 방식으로 떠오르고,
시는 그 빛을 외면하지 않는다.
시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미래의 내일도 ᆢ